즉시연금 '이정표' 삼성생명, 2심서 '승리'...보험업계 기대감↑

by유은실 기자
2022.11.23 18:12:26

생보사 즉시연금 소송 '첫' 2심 승소
법원 "명시하지 않아도 설명 충분" 판단
업계 "1조원대 즉시연금 소송 향방 가를 판결"

[이데일리 유은실 기자] 삼성생명이 ‘즉시연금 소송’ 2심에서 승리했다. 가입자들 손을 들어줬던 1심과 달리 2심에서 삼성생명이 승소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보험업계에선 조심스럽지만 ‘승기를 잡았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국내 생명보험사를 상대로 제기된 즉시연금 미지급금 분쟁 규모가 1조원대에 이르는데, 이중 삼성생명 분쟁 규모가 4000억대로 가장 큰 데다 2심에서 보험사가 승리한 경우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이에 보험권은 이번 삼성생명 승소를 소송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종이’로 보고 향후 이어질 판결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다른 보험사들도 ‘설명의무 이행’을 두고 비슷한 소송을 벌이고 있는 만큼, 이번 법원 판단이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삼성생명의 최종 결론뿐 아니라 2심을 앞두고 있는 동양생명·교보생명, 그리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미래에셋생명 재판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진=삼성생명)
23일 보험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민사12-2부는 삼성생명의 즉시연금 지급 관련 2심 소송에서 삼성생명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와 달리 보험사의 ‘설명 의무’를 ‘명시’로 보지 않으면서, 삼성생명의 상품 설명이 충분했다고 판단했다.

즉시연금은 목돈을 한번에 보험료로 내면 곧바로 보험료 운용수익 일부를 매달 생활연금으로 주고 만기시 원금을 돌려주는 상품이다. 연금 형식으로 지급되다가 만기가 돌아오면 보험료 전액을 돌려주는 상품으로 인식됐는데, 보험사들이 연금월액 일부를 만기환급금을 위해 공제하면서 분쟁이 시작됐다.

지난 2018년 금융 소비자단체 등은 삼성생명 등 생보사들이 즉시연금 가입자들로부터 만기환급금 재원을 임의로 차감, 보험금을 덜 지급했다며 가입자들을 모아 공동소송을 진행했다. 삼성생명 즉시연금 상품에 가입했던 소비자들은 매달 받는 연금 수령액이 약관 가입안내서에 설명된 연금액보다 적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생명이 공제 근거로 내놓은 ‘보험료 및 책임준비금 산출방법서’는 약관으로 볼 수 없다는 게 주된 주장이다.

앞서 진행된 1심의 쟁점도 ‘약관’과 ‘설명의무’로 모아졌다. 소비자 측은 적립액 차감에 대한 내용이 약관에 명시되지 않았다는 점, 예금 대체수단으로 홍보됐다는 점 등을 주효 지적 사항으로 내놓았다. 가입자들은 실제로 받은 약관엔 사업비 등 일정 금액을 떼고 매월 연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없었다는 것도 강조했다. 반면 삼성생명은 산출방법서, 가입설계서, 약관 등을 통해 가입자들의 관련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산출방법상 연금월액의 계산 부분이 보험약관의 일부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약관에 해당 내용을 명시하지 않아 가입자 측이 인지하기 어려웠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삼성생명이 연금액 산정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 가입자들이 보험 체결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인 설명을 했다고 보면서 판결이 뒤집혔다.

보험업계는 이번 법원 판단이 향후 즉시연금 소송에 있어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각 보험사마다 약관 내용에 차이가 있지만 소송의 핵심은 ‘설명의무’로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약관에 만기환급금 마련을 위한 연금액 차감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명시해 1심에서 이긴 NH농협생명 사례로, 명시 자체가 설명의무로 굳혀지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후 지난해 10월 처음으로 삼성생명·한화생명이 개별 소비자 건에서 승소하며 분위기가 반전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여기에 이날 즉시연금 가입자 57명이 삼성생명에게 제기한 공동 소송건까지 삼성생명이 승리하자, 보험업권은 남은 즉시연금 판결에 긍정적인 신호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 봤다.

현재 즉시연금 가입자와 소송 중인 보험사는 교보생명, 동양생명, 미래에셋생명 등이다. 교보생명·동양생명은 항소심을 진행 중이다.

미래에셋생명의 경우 작년 1심에서 약관에 만기보험금 지급 재원을 위한 공제 사실을 명시하지 않았고, 가입자에게 공제 사실을 설명하지도 않았다는 지적을 받아 패소했다. 미래에셋생명이 이에 대해 불복해 항소했지만, 재판부는 항소심에서도 원고인 소비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미래에셋생명은 항고를 결심, 대법원까지 판결을 가져가 심리를 다투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이번 삼성생명 2심이 즉시연금 소송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리트머스 종이로 여겨져, 조심스럽지만 보험권에서는 이번 판결에 대해 환영한다는 분위기”라며 “물론 각사의 약관 내용이 조금씩 달라 법원의 판단은 지켜봐야겠지만, 보험사들의 설명의무를 과도하게 설정하지 않은 판결이 나왔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