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메리츠' 용단 내린 조정호 회장과 '밑그림' 짠 김용범 부회장
by전선형 기자
2022.11.22 18:06:50
‘지분축소도 감수할 것...주주가치 올려라’ 특명
경영진, 메리츠금융 ‘단일상장사’ 제안하며 성사
화재ㆍ증권 포괄적주식 교환 깜짝 결정...시장 환호
[이데일리 전선형 노희준 이은정 기자] “내 지분이 줄어들어도 좋다. 그리고 나는 기업을 (자식들에게) 승계할 생각이 없다. 경영효율을 높이고 주주 가치를 제고하는 방향으로 가 보자.”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은 올해 초 한 회의에서 계열사 경영진들을 불러 놓고 이런 얘기를 꺼냈다. 주주가치를 높이고, 자본 배치 효율성도 높여 메리츠금융그룹을 성장시켜보자는 취지였다. 경영진들은 여러 차례 이어진 조 회장의 이 같은 발언에 머리를 맞댔다. 경영진 입장에선 손댈 수 없는 ‘대주주 지분’ 문제가 풀리니, 그룹을 키울 수 있는 선택지가 확 넓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메리츠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동시에 ‘빠르고 정확한 투자 판단이 이뤄질 수 있는 것’을 고안했다. 바로 ‘원(one) 메리츠’ 전략이다.
|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사진=메리츠금융그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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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츠금융지주는 지난 21일 오후 ‘포괄적 주식교환’이란 경영전략을 깜짝 발표했다.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을 완전 자회사로 전환해 ‘단일 상장사’로 전환한다는 내용이다. 포괄적 주식교환이란 회사 간의 주식교환계약을 통해 자회사 발행주식총수를 지주회사로 전부 이전하고, 자회사 주주들은 지주회사가 발행하는 신주를 배정받아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방법이다.
현재 주가가치에 따라 메리츠증권 보통주식 1주를 가진 주주는 메리츠금융지주 0.1607327주를 받게 된다. 메리츠화재는 1주당 메리츠금융지주 1.2657378주를 받는다. 메리츠금융지주는 신주 발행을 통해 교환 주식을 교부할 예정이다.
포괄적 주식교환 내용은 메리츠 내부에서도 극소수의 경영진만 공유하고 있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이날 공식 자료를 내놓은 후 1시간여 뒤에 ‘콘퍼런스콜 방식’의 기업설명회(IR)를 개최했는데, 이때 애널리스트들도 해당 설명회를 참여하기 위해 급히 일정을 변경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빠르고 과감한 투자로 유명한 메리츠의 의사결정 작업을 위해서라도 자회사를 편입해 일원화시킬 것이라는 기대감은 존재했다. 실제 메리츠금융은 3개 회사의 상장으로 인해 배당, 이사회 일정 시간이 지체되면서 해외투자 기회를 놓친 사례도 있다고 알려진다. 하지만 자회사 편입이 될 경우 복잡한 지분관계와 수익, 자본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시점은 늘 미지수였다.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자회사 편입을 메리츠가 오랫동안 준비한 것으로 안다”며 “조 회장이 ‘지분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겠다’고 하면서 경영진들의 선택지가 넓어졌을 테고, 특히 지금 주가가 낮으니 비용이 덜 들어 괜찮은 시점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조 회장의 이 같은 통 큰 결단에는 ‘메리츠의 믿을맨’으로 통하는 김용범 메리츠금융지주 부회장의 실행력이 뒷받침이 됐기에 가능했다. 삼성 금융계 출신인 김 부회장은 이후 메리츠증권과 메리츠화재 성장을 이끈 주인공이다. 조 회장은 전문경영인 김용범 부회장의 결정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메리츠금융의 실적이 사상최대라는 점도 이번 결정을 발표하는 데 자신감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메리츠금융의 올해 3분기 공시된 순익은 1조3767억원으로 사상최대다.
‘단일 상장사’라는 깜짝 이벤트에 일각에선 자연스럽게 조 회장의 경영승계 의혹도 나오고 있다. 조 회장은 슬하에 1남2녀의 자녀가 있는데 현재 학교를 다니거나 메리츠와는 관계없는 회사를 다니고 있다. 다만 조회장은 경영진들에게 공공연하게 ‘경영승계 계획이 없다’고 말해왔다고 전해진다. 자식들도 조 회장의 경영승계 의견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 신주 발행과 포괄적 교환 후 조 회장의 지주지분율은 현재 75.8%에서 약 47%로 떨어진다. 한간에서는 단일 상장후 ‘통매각’ 할것이란 전망도 나오지만, 당장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메리츠의 이 같은 결정에 시장은 환호했다. 메리츠금융그룹 관련주는 22일 일제히 상한가를 쳤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메리츠화재는 29.97% 오른 4만6400원, 메리츠금융지주는 29.91% 오른 3만4750원, 메리츠증권은 29.87% 오른 5870원을 기록하며 빨간 기둥을 형성했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오늘 상한가는 그동안 공매도 친 물량들이 쇼티지가 나면서 나온 반응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메리츠와 주주가 함께 기업가치를 누릴 수 있다는 기대치에 따른 것”이라며 “단기 변동성은 있겠지만 우상향을 그릴 것”이라고 봤다. 그는 또 “국내에서는 통상 내부자 정보가 새고 이에 따라 거래가 미리 움직이는 경향도 있는데, 발표 직후 공매도 추이와 시장의 반응을 보면 전혀 없었고, 보안이 철저하게 이뤄진 것 같다”고 했다.
특히 이날 내놓은 주주환원 정책은 주주들을 환호케 했다. 단일 상장사가 되는 메리츠금융지주는 배당 및 자사주 매입 소각을 포함해 연결 기준 당기순이익의 50%를 주주 환원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 또한 조 회장의 작품으로 알려진다. 특히 자사주 소각 등의 조치 등이 이뤄지면 주주는 물론 조 회장에게도 나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전문가들은 이번 주주환원 정책이 한국에서 상징적인 사례가 될 것이라고 평가한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주식시장이 호황일 때 기업들이 자금조달을 손쉽게 하기 위해 유상증자, 전환사채 등을 많이 공급했고 주주에게 부담이 되곤 했는데, 메리츠는 이와 정반대의 의사결정을 한 것”이라며 “최대주주와 대주주의 양해로 이뤄진 이번 결정은 시장에 진정성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남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메리츠의 이번 사례를 통해 주주가치를 높여 선진화된 주주환원 정책의 진정성이 잘 전달됐으면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