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동욱 기자
2015.01.13 17:54:52
그림의 떡 임금피크제
"임금피크제 선택해도 담당할 업무없어"
지난해 1860명 희망퇴직
만 60세로 정년연장
적용시기 해당안돼
올해도 희망퇴직 줄 이을 듯
[이데일리 김동욱 기자] 서울 송파구에 사는 김모(55)씨는 아침에 일어나면 한숨부터 쉰다. 시중은행에서 관리자급으로 일하는 김씨는 올해로 만 55세가 돼 ‘회사에 남을 것인지, 떠날 것인지’의 기로에 섰기 때문이다. 김씨가 일하는 은행은 만 55세 직원을 상대로 임금피크제를 적용한다. 임금피크제를 택하면 만 60세까지 정년을 보장받을 수 있지만 대신 연봉이 대폭 깎인다. 당장 짐을 싸면 몇 년 치 월급을 위로금으로 받는다. 김씨로선 회사에 남는 편이 낫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정작 김씨에게 주어진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김 씨는 “정년을 채우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새로 들어갈 자리가 거의 없어 임금피크제 대상 대부분은 희망퇴직을 택한다”며 “당장 갈 곳이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요즘 시중은행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경기 침체와 맞물려 은행 경기가 예전 같지 않다 보니 사실상 정년을 채우는 게 거의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만 55세가 되면 짐을 싸야 하는 게 현실이다. 올해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정년을 채우기 전에 스스로 짐을 싸야 하는 ‘조용한 칼바람’이 은행권에 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은행 정년은 만 58세다. 그러나 이 나이까지 정년을 채우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임금피크제를 운용하는 은행에선 만 55세가 되면 김씨와 같은 선택지를 받지만 대부분 희망퇴직을 택하기 때문이다. 연봉이 깎이는 대신 은행에 남는 쪽을 택해도 만 60세까지 회사에 남아 있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은행 수익은 점점 줄고 있는 데다 인터넷거래처럼 비대면거래는 느는 추세여서 은행으로선 인력 효율화가 더 시급한 상황”이라며 “이렇다 보니 임금피크제를 선택해도 이들에게 적절한 업무를 주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본지가 신한·국민·우리·하나·외환·농협·기업·한국씨티·SC(스탠다드차타드)은행 등 시중은행 9곳을 대상으로 지난해 희망퇴직 직원을 조사한 결과 총 1860여명이 정년을 채우기 전에 짐을 싼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대부분은 지난해 만 55세를 맞은 1958~1959년생으로 은퇴를 앞둔 관리자급 은행원이다.
시중은행 중에선 국민·우리·하나·외환·기업은행이 임금피크제를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은행에 남아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나(59명)·외환(113명)·기업은행(160여명)의 경우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 대부분이 희망퇴직을 택했다. 우리은행은 만 55세 직원 250여명 중 절반 이상인 130여명이 은행을 떠났고 국민은행은 200여명 중 88명이 짐을 쌌다. 이들 은행에선 만 55세 직원 780여명 중 70%인 550여명이 정년을 채우기도 전에 현역에서 물러난 것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에서도 만 55세 직원을 상대로 임금피크제를 적용하기 때문에 이들에겐 웬만하면 승진인사를 하지 않는다”며 “만 55세를 넘겨 은행에 남아 있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