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가려했는데 한 자 적는다"...'수원 세 모녀'가 남긴 숙제

by박지혜 기자
2022.08.23 23:33:34

[이데일리 박지혜 기자] 생활고와 질병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한 이른바 ‘수원 세 모녀’의 유서가 이 사회에 숙제를 남겼다.

지난 21일 수원시 권선구 다세대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모녀 곁에는 공책 크기의 수첩이 남겨져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23일 JTBC에 따르면 40대인 둘째 딸이 쓴 고된 삶의 흔적이었다. “그냥 가려 했는데 한 자 적는다”라고 시작한 글에는 2년 전 그나마 경제활동을 하던 오빠가 병으로 숨지고, 몇 개월 후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난 슬픈 가족사가 담겼다.

또 난소암에 걸린 어머니, 희귀병으로 아픈 언니를 대신해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해 정신적으로 힘들다는 토로도 적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3일 오전 이틀 전 숨진 채 발견된 수원 세 모녀가 살던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한 다세대 주택 1층 집 현관문에 엑스자 형태로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어진 60대 어머니의 유서에는 “딸들이 어릴 때부터 경제적으로 어려워 힘들었다”, “빚 독촉을 피해 주소만 화성시에 두고 수원시로 이사를 왔지만 힘든 것은 마찬가지”라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는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공과금 체납과 단전 등을 토대로 위기 가구를 파악했고 수원 세 모녀도 여기에 해당했지만 실거주지를 알아낼 수 없었다. 어머니의 유서 내용처럼 주소지와 거주지가 달랐기 때문이다.

8년 전 송파 세 모녀도 생활고에 시달렸지만 복지혜택을 받지 못한 채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야만 했다.

지자체나 복지 담당 기관이 뻗는 도움의 손길에 빈틈이 다시 드러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23일 출근길에서 이와 관련해 “그동안 정치복지보다 약자복지로, 자신의 목소리를, 어려움을 한목소리를 낼 수 없는 약자들을 찾아서 어려운 삶을 배려하겠다고 국민 여러분께 말씀드려왔는데, 중앙정부에서는 이분들을 잘 찾아서 챙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서 이런 일들이 또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대통령으로서 어려운 국민들을 각별히 살피겠다”라고 밝혔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