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 식품 재출시가 마냥 반갑지만 않은 이유

by노희준 기자
2025.03.13 13:32:57

농심 농심라면(1975년), 서울유유 미노스 바나나우유(1993년)
오리온 비틀즈(1990년) 등
"맛 업그레이드하고 크기 키워 재창조"이지만
"現 글로벌 트렌드 거리...낮은 R&D 성과 단면"

[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식품회사들이 잇달아 단종 제품을 재출시하고 있다. 내수 경기 침체 상황에서 검증된 제품을 통해 새상품 리스크와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데다 소비자 요청에 부응할 수도 있어서다. 다만, 이런 제품이 자극적인 맛 중심의 글로벌 트렌드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아울러 식품업계가 신제품 개발에 적극 나서지 못할 정도의 낮은 연구개발 성과를 보여준다는 시각도 있다.

1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농심은 지난 1월 창립 60주년을 맞아 1975년 출시한 ‘농심라면’을 단종 35년 만에 다시 내놨다. 이 라면은 1978년 기업 사명을 바꾸는 계기가 될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제품이다. 서울우유협동조합도 지난 1월 ‘미노스 바나나우유’를 12년 만에 재출시했다. 이 제품은 1993년 출시돼 2012년 단종 때까지 긴 시간 사랑을 받았던 우유다. 오리온 역시 지난달 말 츄잉캔디인 ‘비틀즈’를 개선한 ‘올뉴 비틀즈’를 선보였다. 비틀즈는 1990년에 나와 다양한 과일 맛을 골라 먹는 재미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식품회사가 예전에 단종한 제품을 재소환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농심은 올해 창립 60주년을 맞아 ‘농부의 마음’이라는 사명 의미를 되새기고 맛있는 음식으로 따뜻한 정을 나누자는 의미를 담아 재출시했다.

소비자 요청도 한 요인이다. 서울우유 미노스 바나나우유와 오리온 비틀즈는 소비자가 단종 상품을 다시 부활시킨 경우다.



특히 단종 상품 재출시는 ‘익숙한 맛의 귀환’을 통해 식품회사의 신상품 출시 리스크를 줄여준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식품은 제품 구매에서 제품 정보 탐색과 대안 비교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대표적인 ‘저관여제품’으로 흔히 먹어온 익숙한 맛을 찾기 일쑤”라고 말했다. 역으로 이는 신제품이 기존 맛의 장벽을 뚫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예전 히트작은 새제품에 따르는 생경함을 넘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 또한 단종 상품은 기존 레시피가 남아 있으면 새제품 개발에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든다.

추억의 제품이 원본 그대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원제품 핵심 골격은 유지하면서도 새로 피와 살을 붙여 새형상으로 탈바꿈된다. 농심은 국산 쌀을 첨가해 면발을 더 쫄깃하고 탄력있게 하고 한우와 채수를 사용해 소고기국물 맛을 더 깊고 얼큰하면서도 시원하게 했다. 비틀즈의 경우 오리온은 지난해 6월 생산을 종료한 뒤 맛과 식감을 높이기 위한 연구 개발에 착수했다. 이를 통해 비틀즈 한 알의 크기를 2배 가까이 키워 한 번에 두 알을 먹는 듯한 풍성함과 함께 한층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을 구현했다. 서울우유도 옛 미노스 바나나우유보다 원유함량을 6%포인트 높여 더 진한 맛을 살렸다.

일각에서는 단종 제품 부활 전략이 K푸드의 해외 진출과 관련해서는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상오 단국대 바이오융합 식품공학과 교수는 “식품은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 보다는 기존에 먹던 것을 안심하며 먹는 게 좋다는 생각 때문에 결국 예전 것을 찾게 된다”면서 “부모가 아이와 먹는 것을 공유하다 보니 아이들도 그 맛을 쫓아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만 “지금 글로벌 트렌드로 잘 나가는 것은 매우 매운 자극적 맛”이라며 “방법을 달리해야지 신제품이 잘 될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단종 제품 부활을 국내 식품회사의 낮은 수익성, 부족한 연구개발 성과와 연결짓는 시각도 있다. 실제 국내 주요 식품회사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2023년 기준 국내 상장 식품기업 중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 상위 기업은 CJ제일제당(097950)(1.31%)과 KT&G(033780)(1.2%), 삼양사(145990)(1.05%), 롯데칠성(005300)(1.01%), 대상(001680)(1%)·풀무원(017810)(1%) 등으로 모두 1% 수준이다. 국내 R&D 투자액 상위 1000개 기업의 매출액 대비 R&D 투자액 비중 평균인 4.4%의 4분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