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권한vs국회 입법권 충돌…정치불신만 가중

by송주오 기자
2023.04.13 17:41:22

양곡법 재표결서 찬성 177표 반대 112표로 부결
부결 가능성 큰 상황서 강행…尹대통령 압박용 풀이
간호법·방송법·노란봉투법서 갈등 되풀이 전망

[이데일리 송주오 이상원 기자]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대통령의 권한과 국회의 입법권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윤 대통령이 양곡관리법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자, 더불어민주당은 재표결로 대통령의 거부권 무력화로 맞섰다. 양측은 앞으로 있을 간호법과 방송법,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처리에서도 충돌을 예고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국회는 13일 오후 본회의를 열고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상정해 찬성 177표, 반대 112표, 무효 1표로 부결됐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윤 대통령이 지난 4일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로 돌려보낸 법안이다. 윤 대통령 취임 후 첫 거부권 행사였다. 하지만 민주당은 양곡관리법을 국회 본회의에 재상정해 윤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력화했다.

이날 양곡관리법 부결은 예고됐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재상정된 양곡관리법 통과 기준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이 다시 의결되려면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필요로 한다. 애초 169석의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모두 찬성한다고 해도 국민의힘(115석)이 반대하면 통과할 수 없는 구조였다. 민주당이 양곡관리법의 부결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도 재표결을 강행함으로써 윤 대통령을 압박하는 전략으로 활용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여야는 본회의 개최를 앞두고 양곡관리법 처리를 두고 날 선 신경전을 벌였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다수당이 여야 간 쟁점이 해소되지 않고 재정 부담을 가중시키거나 사회적 갈등을 야기시킬 게 뻔한 법안을 일방 강행하는 일이 반복돼서는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 입법권은 충분히 보장되고 존중돼야 하지만, 정권에 정치적 부담을 주기 위해 남용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민주당을 비판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오늘 개별 헌법기관의 뜻이 무엇인지 재투표를 통해 확인하겠다”며 “의사일정 변경동의안을 제출해서라도 개별 헌법기관의 의견을 물을 것”이라며 입법권을 강조했다.

양측은 간호법과 방송법, 노란봉투법 처리 과정에서도 대결을 예고하고 있다. 민주당은 현행 의료법상 간호사 업무 규정을 별도 법률로 분리해 간호사 면허와 자격, 업무 범위, 처우 개선 등에 관한 사항을 골자로 한 간호법을 제출한 상태다. 이에 맞서 정부와 국민의힘은 최근 고위 당정협의회를 통해 간호법을 간호사 처우 등에 관한 법률로 바꾸고, 간호사의 업무 범위 등을 현행 의료법으로 규정하는 중재안을 마련하고 11일 제시했다.

다만 간호법의 경우 윤 대통령이 간호사 처우 개선에 공감해왔다는 점에서 거부권 언급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선후보 시절인 지난해 1월 11일 대한간호협회를 찾아 “간호사들에게 사명감만 요구하며 계속 무거운 짐을 지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 국민과 정부가 합당한 처우를 해주는 것이 바로 공정과 상식”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46만명에 이르는 ‘간호사 표심’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도 고려 대상이다.

특히 여론 악화가 부담이다. 엠브레인퍼블릭, 케이스탯리서치, 코리아리서치, 한국리서치가 10~12일만 18세 이상 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 ‘문제 있다’ 51%, ‘문제 없다’ 38%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 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의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