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 해 봤어?” 초전도체 논란 사그러들지 않는 이유

by김혜선 기자
2023.07.31 20:52:18

한국 연구진 ''상온 초전도체 발견'' 논문에 전세계 발칵
아인슈타인도 어려워한 초전도 이론...''현상''은 말한다
초전도체 발견의 규칙 "이론 물리학자를 피할 것"

[이데일리 김혜선 기자] 국내 연구진이 ‘상온 상압 초전도체’를 개발했다는 논문을 사전논문 사이트 아카이브에 올려 세계 과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대다수의 국내외 전문가들은 해당 논문의 진위 여부에 회의감을 드러내고 있지만, 초전도체를 연구하던 과학자들은 이 논문이 제시한 ‘레시피’대로 초전도체를 만드는 실험에 나섰다.

간단히 설명하면, 초전도체는 특정한 온도 아래에서 물질의 저항이 0이 된다. 전기를 쓸 때 저항을 0으로 줄여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어 에너지 사용에 있어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 이 밖에 자석의 자기장이 내부로 침투하지 못해 공중에 붕 뜨는 현상이 일어나 자기부상열차 둥에 이용할 수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국내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이 허술함에도 세계 과학자들이 앞다퉈 실험에 나선 이유는 초전도체가 갖는 미지의 특성 때문이다. 초전도 현상은 네덜란드 과학자 카메를링 온네스가 지난 1911년 최초로 발견했는데, 당대 천재 과학자였던 알버트 아인슈타인조차 초전도 현상을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과학자들은 초전도체 현상을 이론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특정한 물체를 아주 낮은 온도로 냉각했을 때 저항이 0이 되는 ‘현상’은 분명히 일어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초전도체를 많이 발견한 것으로 알려진 브랜드 마티어스는 초전도체를 찾는 5가지 경험적 규칙을 제시하고,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이론 물리학자들을 멀리 하라”고 말했다. 이후 50여 년이 지나서야 초전도체 이론을 설명하는 ‘BCS 이론’이 등장한다.

그런데 또다시 이론상으로 ‘불가능한 온도’에서 초전도체가 만들어지는 일이 벌어졌다. 취리히 IBM 연구소의 게오르크 베드노르츠와 알렉산더 뮐러는 구리 함유 화합물로 35K(섭씨 -238도)가까이에서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는 ‘고온 초전도체’를 발견했다. 이론상으로는 25K를 넘는 온도에서 초전도체를 찾을 수 없었는데, 이 공식이 또다시 뒤집힌 것이다.

이후 과학자들은 앞다둬 더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체를 만들기 위한 연구에 매진해왔다. 그러던 중 이석배 퀀텀에너지연구소 대표(고려대 창업기업) 등 연구팀이 사전논문 사이트 ‘아카이브’에 ‘상온’과 ‘상압’에서 초전도체를 만들었다는 발표를 한 것이다. 극저온이나 초고압 환경을 만들지 않아도 초전도체 물질을 이용할 수 있다는 얘기는 곧 ‘상용화’가 가속화된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이론적으로 설명하지 못해도, 명백한 현상이 관측된다면 초전도체를 발견했다고 인정받을 수 있다. 국내 초전도 재료과학자인 김찬중 박사가 지난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설명한 베드노르츠와 뮐러의 초전도체 논문 발표 과정도 그랬다. 김 박사는 “베드노르츠와 뮐러의 논문은 허술하고 간단했다. 그들도 반신반의했는지 논문 제목을 ‘아마도 초전도성’이라고 했다”며 “이후 일본에서 실험을 재현하고 물질의 결정구조를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초전도체 발견을 이야기하려면 ‘재현성’이 있어야 한다고 짚었다. 같은 방식으로 다른 연구진이 초전도체를 만들어낸다면, 이론적으로 설명되지 않아도 초전도체를 발견했다고 인정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에 발표된 논문의 경우 초전도체를 만드는 방법이 상세하게 설명되어있고, 그 방법도 크게 어렵지 않다. 미국, 중국, 인도 등 세계에서 이번 논문의 ‘레시피’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실험에 나선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연구진은 인산구리를 925도의 고온에서 10시간 구워 얻은 물질을 산화납, 황산화납과 섞어 다시 725도에서 24시간 반응시켰더니 초전도 현상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이 명명한 이 초전도체의 이름은 ‘LK 99’다.



초전도체의 발견 역사에서는 이론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이 실제로 일어났기 때문에, 이번 한국 연구진의 발표에도 일부 과학자 그룹이 팔을 걷어붙이고 상온 초전도체 재현에 나섰다. 그럼에도 많은 국내외 과학자들은 이 논문에 대해 강한 회의감을 드러내고 있다. 논문 내용이 너무 허술했기 때문이다.

초전도체 발견을 인정받으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1. 특정 온도 아래에서 전기 저항이 0이 되어야 할 것 2. 들어오는 자기장을 밀어내는 ‘마이즈너 효과’가 일어날 것 3. 초전도체가 아닌 시점에서 초전도체로 변할 때 상전이가 일어날 것.

(*상전이란: 특정 온도에서 원자의 배열이 바뀌지 않지만 전자의 상태가 변하는 현상. 예를 들어, 물은 0도에서 얼음이 되고 100도에서 수증기가 되지만 물의 분자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비슷하게 초전도체도 특정 온도에서 겉으로 보기에 그대로 있는 것 같지만, 전자들의 상태가 변하며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된다. 물질의 원자나 이온이 어떤 순서로 배열돼 있는지 ‘결정구조’를 분석해 제기하는 것은 초전도체의 상전이가 일어나는지 살펴보는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아카이브에 올라온 한국 연구진의 초전도체 사진.
우선 한국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에는 세 가지 요소가 모두 들어갔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연구진이 설명한 초전도체 조건 그래프가 엉성하다는 이유로 진짜 초전도체가 아닐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미국 라이스대의 더그 나텔슨 교수는 지난 27일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한국 연구진의 두 논문에 각각 LK-99의 자기적 특성을 자세히 설명하는 도표가 나온다”며 “같은 데이터로 만든 도표이므로 같아야 하는데, 한 논문의 도표에는 다른 도표보다 약 7000배 더 큰 눈금을 가진 Y축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연구진이 공개한 자석 위에 붕 뜬 초전도체 사진도 온전히 부양한 것이 아니라 일부가 자석에 맞닿아 있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했다. 반면 연구진인 김현탁 교수는 영국 뉴사이언티스트지에 “시료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일부분만 초전도가 되어 마이스너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구 내용이 엉성하다고 하더라도 큰 틀에서 초전도체 조건을 충족한다는 의견도 있다. 나디아 메이슨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는 “데이터가 약간 엉성하다”면서도 “연구팀이 적절한 데이터와 그들의 제조 기술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한국 연구진의 상온 초전도체 발견은 다른 연구진의 ‘재현’ 여부에 따라 진위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 메릴랜드 대학교 응집물질이론센터(CMTC)는 공식 트위터에서 “이 논문의 이론적, 배경적 논의는 너무 순진해서 우리 대학교 학부 프로젝트라면 F를 주었을 정도다”라고 혹평하면서도 말미에 “이 트윗은 논문의 실험적 주장을 무효화하지는 않는다. 이런 주장은 실제 실험을 통해 검증되어야 한다”고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었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한마디가 떠오른다. “이봐, 해 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