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첨단기술 유출 날로 심각…수사 확대·처벌 강화 절실"

by최영지 기자
2022.08.30 17:47:09

국정원 "5년간 국가핵심기술 83건 유출..83.1%가 반도체 등"
특허청 "기술유출서 가장 중요한 건 예방…사업 지원 중"
"디지털 수사능력 중요…국정원·검·경 합동 수사 필요"
전경련, 30일 첨단기술 보호 세미나 개최

[이데일리 최영지 기자] “경쟁국에서 우리나라 핵심 인력을 매수하기 위해 기존 연봉의 3배를 제시하는 식의 전통적인 수법 말고도 새로운 기술유출 사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컨대 동종업계·이직금지 등 제한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외관상으로 업무와 무관한 컨설팅업체를 만들어 우리 인력을 이동시키는 식의 방법도 쓰고 있습니다.” (국가정보원 기술보호담당관)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의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하며 경제안보 시대를 맞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반도체를 비롯한 우리나라 첨단기술의 해외 유출 위험을 막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김일규 특허청 산업재산보호정책과장이 30일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경제안보 시대, 첨단기술 보호 어떻게 할 것인가’ 세미나에 참석해 ‘국내 영업비밀 보호 제도 및 지원 시책’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전경련)
30일 오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국가정보원, 특허청과 함께 전경련회관 컨퍼런스 센터에서 ‘경제안보 시대, 첨단기술 보호 어떻게 할 것인가’ 세미나를 개최해 중국 등 경쟁국의 국내 기업을 상대로 한 기술 탈취 실태를 짚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국내 영업비밀 보호 제도 등을 소개했다. 탈취 수법이 다양해진다며 보다 신속하고 전문적인 수사뿐 아니라 처벌 강화를 위해 재판과정에서 피해자 참여권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김일규 특허청 산업재산보호정책과장은 “보호해야 할 기술정보로는 특허와 영업비밀이 있다”며 “영업비밀의 경우 법에서 정의하는 비공지성, 경제적 유용성, 비밀관리성을 모두 충족해야 보호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허청은 기술유출 정책에서 가장 주력하는 것은 예방이라며 △영업비밀 관리시스템 보급 △영업비밀 원본증명 서비스 △디지털 포렌식(유출 대응) 및 증거보존(예방) 등 추진 중인 지원사업을 소개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발제를 맡은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의 기술보호담당관은 ‘경쟁국의 기술 탈취 실태 및 대응 방안’에 대한 주제발표를 통해 지난 2018년부터 올해 7월까지 국정원이 적발한 첨단기술 해외 유출은 총 83건이었다고 밝혔다. 이 중 33건(39.8%)은 국가안보와 국민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가핵심기술 유출사건이었다.

피해 집단별로는 중소기업이 44건(53.0%)으로 가장 많았고 대기업(31건), 대학·연구소(8건)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69건(83.1%)은 반도체·전기전자·디스플레이·자동차·조선·정보통신 분야 등 우리나라 주력산업에 집중돼 있었다.



국정원은 이어 우리 기업·연구소·대학 등을 대상으로 경쟁국 기업 등이 기술을 탈취하는 수법은 △핵심 인력 매수 △인수합병 활용 △협력업체 활용 △리서치 업체를 통한 기술정보 대행 수집 △공동연구 빙자 기술유출 △인·허가 조건부 자료제출 요구 등이었다. 기술유출 첩보를 입수했을 때 신속한 조사를 통해 검경 등 수사기관의 엄정한 사법처리를 지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중국으로의 기술유출이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배경에 대해 “지리적 근접뿐 아니라 반도체와 이차전지 등 주력산업이 중첩한다”며 “양국은 높은 무역 의존도를 갖고 있어 우리 대기업, 연구원, 대학교수들을 영입 대상”이라고 분석했다. 국정원의 기술보호 관련업무로 △전략산업 보호·예방활동 △기술탈취 징후 신속 탐지 및 사전 차단 △기술 유출 주요 경로별 예방활동 등을 언급했다.

▲전경련이 30일 개최한 ‘경제안보 시대, 첨단기술 보호 어떻게 할 것인가’ 세미나에서 김윤희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 등 패널이 토론을 진행 중인 모습.
기술유출 정황이 드러났을 경우 신속한 수사뿐 아니라 재판에서의 증거 입증 강화를 위한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검찰 재직 당시 특허범죄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김윤희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단과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합동수사단 출범에 이어 첨단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서도 전문부서의 역량을 모아야 한다”며 “국가전략기술 유출을 수사하는 산업기술범죄합동범죄수사단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고 했다. 이어 우리 검경과 국정원이 시너지를 발휘한다면 신속한 수사에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출 기업에 대한 형량 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아지자 김 변호사는 “양형 강화를 위해선 수사가 잘 돼야 하고 재판과정에서 양형인자들이 잘 드러나야 한다”며 “신속한 수사와 더불어 재판 절차 과정에서 피해자 참여가 매우 중요하지만 피고인의 권리 피해 때문에 피해자의 참여가 제한돼 있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최성겸 특허청 수사자문관 검사도 “최근 수사 성패는 하드디스크, 웹하드 등 디지털 증거를 얼마나 잘 압수해서 분석하는지에 달려 있다”며 “유출 침해가 있을 때 기술 베이스있는 수사총량이 좀 더 넉넉해져야 하며, 재판과정에서 피해자 참여권이 확대돼야 한다는 점에 공감한다”고 했다.

앞서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우리나라가 무역액 1조2000억달러, 세계 무역 규모 8위의 강국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은 반도체, 자동차와 같은 첨단기술 기반 산업이 약진했기 때문”이라며 “민간기업의 연구개발비는 연간 73조6000억원에 이르는데 우리 기업들이 피땀 흘려 어렵게 개발한 기술과 인재들이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법적·제도적 보호조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