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최훈길 기자
2016.08.23 16:17:06
누진제, 전기료 후속대책 시급한데 부처 엇박자·책임공방
교육부 "산업부, 인하 모르쇠" Vs 산업부 "권한 없는 교육부"
복지부·산업부 "기재부 협조 無" Vs 기재부 "뒤늦게 투정"
전문가들 "정권 말기 '부처 칸막이', 복지부동 심각"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연일 찜통더위 속에 불거진 전기요금 누진제 논란이 중앙부처 간 신경전으로 치닫고 있다. 전기요금 체계 전반을 개편하는 누진제 후속대책이 시급한데 부처들은 엇박자를 내고 있고 책임공방까지 나선 상태다. ‘부처 칸막이’, 복지부동 (伏地不動)에 막혀 전기요금 관련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늦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최근 가장 세게 부딪히는 부처는 교육부와 산업통상자원부다. 교육부는 교육용 전기요금 체계에 부글부글 끓는 상황이다. 교육용 기본요금제에는 전년도 12개월 중 가장 많은 전기를 쓴 최대수요전력량(피크전력량)을 적용된다. 이 결과 평상시 적게 전기를 쓰더라도 졸업식 연중행사 때 순간 최대전력이 급증하면 ‘기본요금 폭탄’을 고스란히 맞게 된다.
교육부 측에선 한국전력(015760) 요금 약관에 대한 인가 권한을 가진 산업부 책임론을 제기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그동안 산업부가 교육용 요금이 인하되는데 도움 준 게 별로 없다. 산업부 공무원들을 만나기도 힘들다”며 “찜통더위에 전기요금 부담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많기 때문에 찔끔 인하에 그쳐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2일 이영 교육부 차관은 충남 공주시 봉황중학교를 방문해 “학교의 전기요금 부담 완화를 위해 교육용 전기요금을 추가로 낮출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교육부 차관까지 나서 ‘인하론’을 주장하자 산업부는 당혹스럽다는 분위기다. 산업부 고위관계자는 “전기요금 인하 권한, 능력도 없는 교육부가 얘기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교육용을 인상할지 인하할지 모르지만 전기요금 당정 TF(태스크포스)에서 개편을 검토할 것”이라며 “(앞으로 나올 대책에) 학교에서도 기대가 크다”고 반박했다.
경로당 등에 지원하는 냉방비 예산을 놓고도 부처 간 신경전이 일고 있다. 정부가 경로당, 마을회관 등 무더위쉼터(4만1569개)에 지원하는 냉방비 예산은 2개월(7~8월)치만 책정돼 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일부 지자체들은 냉방비 예산 부족을 겪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기재부가 지방 이양 사업이라며 경로당 예산 지원을 아예 해주지 않는다”며 “불만 민원이 폭주하는데 예산 지원은 없고 욕만 먹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안전처 관계자도 “기재부와의 관계가 있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예산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를 두고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보조금 관련 법에 따라 지방 이양 사업 예산을 집행했는데 왜 기재부 탓을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동안 정부는 ‘경로당 냉난방비 지원 사업’이 지방 이양 사업이라는 이유로 매년 관련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 국회는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이 사업 예산을 편성, 현재 국비-지방비로 지원하고 있다.
에너지 바우처(저소득가구 겨울철 난방비지원) 사업의 경우에는 부처 간 책임 떠넘기기가 극심하다. 안전처는 지난 16일 발표한 ‘폭염대책 개선 방안’에서 “산업부와 협의해 에너지 바우처 사업을 여름철 냉방비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산업부와 기재부 간에 입장 차가 있어 사업 확대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주무부처인 산업부 관계자는 “에너지 바우처 사업은 정부 재정과 관련된 것”이라며 “기재부와 협의를 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 마음대로 지원을 확대하지 못한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기재부 관계자는 “에너지 바우처 사업은 산업부가 어떤 정책 방향으로 추진할 의지가 있는지 여부에 달린 것”이라며 “예산 편성할 때는 얘기하지 않다가 이제와서 기재부에 투정을 부려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부처 간 잡음이 계속되는 현 상태를 두고 행정 전문가들은 “정권 말기 현상”이라며 문제가 심각하다고 입을 모았다. 조성한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는 “부처들이 발표회까지 열면서 ‘협력적 거버넌스’ 추진을 약속했지만 실제 민생과 직결된 현안에 부처 협업은 실종된 상태”라며 “정권 말기 ‘책임질 일은 하기 싫다’는 복지부동, ‘선선해지면 조용해질 것’이라는 안이한 공직사회 분위기가 계속될수록 종합적인 전기요금 대책 마련은 힘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