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도로함몰 시한폭탄 '노후 하수관' 서울만 5천km

by유재희 기자
2015.05.07 17:02:44

박원순 시장 등 지하 노후 하수관 직접 점검
벽면·천장 곳곳 콘크리트·철근 부식 ‘심각’
“보수 위한 4000억 국비 지원 절실”

[이데일리 유재희 기자] “콘크리트 가루가 떨어질 수 있으니 안전 조심하세요.”

7일 오전 11시 서울 영등포동 주민센터 앞 맨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박원순 서울시장, 윤성규 환경부장관, 기자 등 20여명은 사다리를 이용해 약 2.5m 아래로 내려갔다. 이날 현장은 최근 잇따르고 있는 도로함몰과 관련해 국회, 중앙정부, 서울시가 합동으로 노후 하수관로 실태를 현장에서 직접 점검하기 위해 마련됐다. 하수관 안으로 들어서자 악취가 코를 찔렀다. 이 하수관은 1983년에 지어진 곳으로 사각형(박스) 형태다.

벽면과 천장 곳곳엔 콘크리트가 떨어져 있고, 부식된 철근이 흉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작은 자극에도 콘크리트 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노출된 철근도 심하게 부식돼, 손으로 만지면 부서질 정도다.

이날 하수관로 안내를 맡은 이채규 한국구조물안전연구원 대표이사가 이동 중 망치로 벽을 두드리자 ‘탕탕’ 울리는 소리가 났다. 이 대표는 “콘크리트가 탄탄한 부분은 맑은소리가 나지만 이곳에선 울리는 소리가 난다”며 “뒤쪽의 콘크리트벽이 부식돼 떨어져 나간 상태”라고 설명했다.

7일 오전 이채규 한국구조물안전연구원 대표이사(왼쪽 첫번째)가 서울 영등포구 노후 하수관로 이동 중 망치로 벽을 두드리자 ‘탕탕’ 울리는 소리가 났다. (사진: 서울시)
부식된 철근이 노출된 곳에 다다르자 이 대표는 “우리나라 하수관 대부분이 철근과 콘크리트로 구성돼 있는데 30여 년이 지나면 철근이 부식·팽창하면서 콘크리트의 약한 부분을 밀어내고, 그 결과 콘크리트가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처럼 철근과 콘크리트가 노후화돼 틈이 벌어지거나 떨어지면 그 사이로 포장층의 흙이 하수관으로 흘러내려 동공이 생기고, 결국 도로함몰로 이어진다. 노후 하수관은 최근 삼성중앙역, 장한평역 일대 등 곳곳에서 연이어 발생한 도로함몰의 주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문제는 이를 알면서도 제대로 보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하수관로 1만 392㎞ 중 30년 이상 된 하수관로가 약 5000㎞로 전체의 48%를 차지한다. 시는 노후 하수관 중 50년 이상이면서 동공 발생지역 및 충적층에 위치한 932km를 2018년까지 우선 정비할 계획이다. 필요한 예산은 1조원 규모. 시는 6000억원을 자체 부담하고 부족분인 4000억원은 중앙정부에 국비 지원을 요청한 상황이다.

현장 점검 후 박원순 시장은 “하수관로 노후로 인한 부식이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 도로함몰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서울시는 1년에 1000억원이 넘는 재원을 쓰고 있지만, 크게 부족하다. 중앙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도 “지하 하수관 상태를 여실하게 봤다. 우리가 땅속에 묻힌 부분은 등한시하기 쉬운데 선진국일수록 안 보이는 곳을 탄탄히 잘한다. 서울시와 중앙정부가 잘 협업해 안전한 사회, 특히 지하 구조물부터 선진화하는 나라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7일 오전 박원순(오른쪽 두번째) 서울시장과 윤성규(오른쪽 첫번째) 환경부 장관이 서울 영등포구의 한 노후 하수관을 합동 점검 중이다. 상부 균열 및 콘크리트 파손, 철근이 노출돼 붕괴 우려가 있다. (사진 : 서울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