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독식’ 막고, ‘사표’ 줄이려면 중대선거구제가 대안

by이도영 기자
2024.04.17 19:16:07

지역구 득표율 5.4%P 차, 결과 71석 차
17대 총선 이후 50% 전후로 사표 발생
중대선거구제 등 선거제 개편 서둘러야
선거제 논의 외부에 맡기는 제도 개선도 필요

[이데일리 이도영 기자] 4·10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전체 지역구 득표율에서 국민의힘에 5.4%포인트 앞섰으나, 민주당은 254개 지역구 중 63.4%에 이르는 161곳을 차지하고 국민의힘은 불과 90곳(35.4%)에서 승리하는 데 그쳤다. 지역구 득표율은 4년 전 21대 총선에서의 격차(8.4%포인트)보다 줄었지만, 여전히 결과는 바뀌지 않아 ‘승자 독식’의 소선거구제 개편을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전국 254개 지역구에서 무효표와 기권표를 제외한 유효표 수는 2923만4129표로 집계됐다. 민주당은 이 중 1475만8083표를 얻어 득표율 50.48%를 기록했고, 국민의힘은 1317만9769표를 얻어 득표율 45.08%를 기록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과 5.4%포인트의 득표율 격차에도 지역구에서 71석 밀렸고, 집권당은 원내 1당을 야당에 내줬다. 지역구 의원 선출은 크게 소선거구제, 중선거구제, 대선거구제로 나뉘는데, 이러한 결과가 나타나는 이유는 지역구 선거에서 득표수 1위 후보만 당선되고 나머지 후보는 낙선해 나머지는 ‘사표’(死票)가 되는 현행 소선거구제의 특징 때문이다.

당선되지 못한 후보를 찍은 사표는 22대 총선에서 전체 유효 득표수의 41.5%인 1213만6757표로 조사됐다. 참여연대가 정당 투표가 처음 도입된 2004년 17대 총선부터 분석한 지역구 사표 현황에 따르면, 17대 총선 49.99% 18대 총선 47.09% 19대 총선 46.44% 20대 총선 50.32%, 21대 총선 43.73%다.

사표 문제는 격전지일수록 크게 나타난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4수 끝에 초선 의원에 당선된 경기 화성을에선 3자 대결이 펼쳐진 관계로 유효표 12만2260표 중 사표가 7만404표(57.59%)로 나타났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이 같은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2일 한 언론과의 신년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를 통해 대표성을 좀 더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고, 여야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와 전원위원회를 구성해 선거제도에 대해 논의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조응천 개혁신당 최고위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현행 소선거구제가 민의를 왜곡하는 것은 분명하며, 선거 결과를 유권자들이 아닌 정당의 손에 맡기게 하는 결과를 만들고 있다”며 “국민에 대표의 선출권을 돌려주고,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포함한 선거제의 전면적 개편을 시작해야 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중대선거구제는 선거구를 넓게 하는 대신 여러 명을 뽑는 방식이다. 한 여러 선거구를 묶어 2~5명을 뽑는 중선거구제와 권역을 크게 분류해 4~7명을 선출하는 대선거구제를 합친 말이다. 승자 독식이 아닌 방식으로 소선거구제에 비하면 사표가 적다는 장점이 있다.

한국선거학회장인 김형철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교수는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중선거구제를 도입하게 되면 사표가 감소하는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을 싹쓸이하는 것보다는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해 ‘내가 찍은 사람이 당선될 수도 있다’는 (사표 방지 심리로) 다른 후보를 밀어줄 수 있어 지역주의 완화에도 도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병립형·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따른 거대 양당 간 유불리와, 결선투표제 등 선거제도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인 만큼 오랜 기간 숙의를 거쳐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아울러 선거제도에 영향을 받는 국회에서가 아닌, 전문가로 구성된 외부 기관을 만들어 선거제도의 객관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전날 선거구 획정 지연을 근절하도록 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국회의원 선거제도제안위원회’가 선거일 12개월 전까지 선거제도 개선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국회는 이를 바탕으로 선거일 9개월 전까지 선거제도를 확정하고, 6개월 전까지 선거구 획정을 완료해야 한다. 김 의장은 “플레이어가 게임의 룰을 만드는 현 제도에서는 선거일이 임박할수록 결정이 어려워지는,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형철 교수는 “정당 간에 선거제도를 협의하다 보면 자신들이 더욱 많은 의석을 차지할 수 있는 제도를 선택할 수밖에 없어 시한을 넘기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김 의장이 제안한 전문가 중심의 선거제도 논의 입법화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고, 적어도 1년 전까지는 선거제도를 완전히 확정해야 유권자들도 선거 방식에 대해 이해할 것”이라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