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찰이 찍은 '안중근 마지막 가족사진'…리움 기술로 복원한다

by오현주 기자
2022.03.22 17:04:51

안 의사 순국 직전까지 품은 사진첩·유묵 2점 등
삼성문화재단, 리움미술관 보존기술로 지원키로
내년 3월까지 작업 후 안중근의사숭모회에 인계
"예산·인력부족 겪는 독립문화유산 보존 나설 것"

‘안중근 의사 가족사진첩’을 보존처리하기 위해 내지 분리작업을 하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로 남은 사진첩이다. 당시 안 의사의 가족을 수상히 여긴 일본 경찰이 총영사관으로 연행해 찍었다는 이 사진은 뤼순감옥에서 안 의사의 통역을 맡은 소노키 스에요시가 사형을 앞둔 안 의사를 안타깝게 여겨, 손수 구한 비단 사진첩에 담아 전해준 것으로 전해진다(사진=삼성문화재단).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112년만에 다시 만난다. 그토록 사무친 얼굴들을 말이다. 비록 흐릿한 사진 한 장뿐이지만 눈에 박아도 아프지 않을 가족이 거기 있지 않은가. 안중근(1879∼1910) 의사가 처형 당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가슴에 품고 있던 빛바랜 사진이 세상에 다시 나온다. 삼성문화재단이 보존처리에 나선 거다.

안 의사 순국 112주기(3월 26일)를 맞아 삼성문화재단은 ‘안중근의사숭모회’가 소장한 안 의사 가족사진첩을 유물 보존처리하기로 했다. 이번 보존처리는 사진첩 1점 외에도 안 의사 유묵 2점(‘천당지복 영원지락’ ‘지사인인 살신성인’)도 함께다.

사진 속에는 하얀 한복을 입은 부인 김아려 여사와 두 아들 분도와 준생이 들어 있다. 작은아들 준생은 어머니 무릎에, 큰아들 분도는 어머니 곁에 섰다. 이 사진 한 장이 세상에 남은 배경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만하다. 당시 안 의사의 가족을 수상히 여긴 일본 경찰이 총영사관으로 연행해 찍은 사진이라니 말이다. 뤼순감옥에서 안 의사의 통역을 맡은 소노키 스에요시가 사형을 앞둔 안 의사를 안타깝게 여겨, 손수 구한 비단 사진첩에 담아 전해준 것으로 전해진다.

끝내 마지막 만남도 하지 못한 가족들이다. 사실 안 의사와 가족은 하얼빈에서 한 번쯤 만날 수도 있었다. 안 의사가 의거 직전 동지인 정대호에게 부탁해 부인과 두 아들을 하얼빈으로 불렀지만, 의거일(1909년 10월 26일) 다음날에 도착해 끝내 상봉하지 못했다는 거다.

사진첩은 안 의사가 세상을 뜬 뒤 소노키가 보관하고 있었는데, 일본의 한 소장가에 의해 2020년 한국에 반환됐다. 삼성문화재단은 “현재 사진첩은 연결부가 끊어져 분리되고 모서리 부분이 많이 닳고 해져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사무친 얼굴들을 담은 안중근 의사의 가족사진첩’. 안 의사의 부인 김아려 여사와 두 아들 분도, 준생이 든 사진(위)과 그 사진이 담긴 사진첩의 표지. 안 의사가 뤼순감옥에서 처형 직전까지 품고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문화재단은 “현재 사진첩은 연결부가 끊어져 분리되고 모서리 부분이 많이 닳고 해져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사진=삼성문화재단).




사진첩과 함께 보존처리되는 유묵 ‘천당지복 영원지락’(天堂之福 永遠之樂)은 ‘천당의 복은 영원한 즐거움’이란 뜻. 안 의사가 1910년 3월 뤼순감옥에서 쓴 것으로 2020년 사진첩과 함께 고국에 돌아왔다. 최초의 소장자는 확실치 않다.

‘지사인인 살신성인’(志士仁人殺身成仁)은 ‘높은 뜻을 지닌 선비와 어진 사람은 옳은 일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뜻. 역시 1910년 3월 뤼순감옥에서 쓴 것으로 자신의 공판을 스케치한 ‘도요신분’ 통신원 고마츠 모토고에게 써준 거다. 이는 고마츠의 종손 고마츠 료에 의해 2016년 11월 한국에 반환됐다. 삼성문화재단은 “작품의 종이, 족자의 주위를 꾸미는 천인 장황천이 불균형으로 인해 꺾이고 우글쭈글하다”고 유묵의 상태를 전했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 2점. 뤼순감옥에서 안 의사가 쓴 이 유묵들은 삼성문화재단이 사진첩과 함께 보존처리한다. ‘천당지복 영원지락’(天堂之福 永遠之樂·왼쪽)은 ‘천당의 복은 영원한 즐거움’이란 뜻이고 ‘지사인인 살신성인’(志士仁人殺身成仁)은 ‘높은 뜻을 지닌 선비와 어진 사람은 옳은 일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뜻이다(사진=삼성문화재단).
사진첩 1점과 유묵 2점 등 이번 안 의사의 유물보존처리에는 리움미술관의 보존처리기술이 동원된다. 사진첩은 사진 상태가 양호해 모서리 등의 손상 부분을 수리해 최대한 원래 모습으로 복원할 예정이다. 유묵은 장황천 교체, 작품이 우는 현상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당시 일본에서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노후한 장황을 보존에 적합한 천연소재로 바꾸고, 종이는 리움미술관에서 직접 만든 고풀(10년 이상 항아리에서 발효시킨 동양 고서화 보존처리에 사용하는 접착제)로 배접한다. 또 안전하고 긴 시간 보관을 위해 굵게말이축과 오동나무상자도 새롭게 제작한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 2점을 보존처리하기 위해 족자에서 자축을 해체하고 있다. 사진첩과 함께 올해 3월부터 시작한 보존처리 작업은 1년여를 소요해 내년 3월쯤 마무리하고, 안중근의사숭모회에 인계할 예정이다(사진=삼성문화재단).


‘안중근의사숭모회’ ‘안중근의사기념관’과 함께 삼성문화재단이 안 의사 유물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건 지난해 8월. 보존처리가 시급한 유물 3점을 선정해 지난 1월 인수받았다. 이후 3월부터 시작한 작업은 1년여를 소요해 내년 3월쯤 마무리하고, 안중근의사숭모회에 인계할 예정이다.

삼성문화재단이 독립문화유산의 보존처리를 지원하는 건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류문형 삼성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안중근 의사 유물을 보존처리하는 데 나서기로 했다”며 “안 의사의 나라와 국민에 대한 사랑, 평화에 대한 사상을 후세에 전하자는 숭모회의 뜻에 공감한다”고 전했다. 이어 “예산과 인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독립문화유산 등을 보존하고, 우리 문화유산의 하는 일에 앞으로도 계속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