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원동 붕괴 사고’ 인재(人災) 정황 포착…경찰 "책임 드러나면 형사 입건"

by박순엽 기자
2019.07.08 16:25:16

구청에 제출한 계획서와 달리 철거 진행…지지대·감리인 없어
현장 인부들 사전에 ‘붕괴 가능성’ 언급한 대화방도 수사
경찰, “관계자 책임 드러나면 형사 입건”…추가 감식 예정

철거 중이던 건물이 무너져 인명 피해가 난 서울 서초구 잠원동 사고 현장에서 5일 경찰 관계자 등이 현장 감식 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지난 4일 일어난 ‘잠원동 건물 붕괴 사고’가 인재(人災)였다는 정황이 경찰 수사 등을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경찰은 이번 사고와 관련해 관계자들의 책임이 드러나면 형사 입건할 방침이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잠원동 건물 붕괴 사고와 관련해 현장 소장과 근로자 등 관련자 9명에 대한 조사를 마쳤다고 8일 밝혔다. 경찰은 이들을 불러 현장 안전 조치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위험 징후가 감지됐는데도 공사를 강행한 것은 아닌지 등 이번 사고에 대한 전반적인 사안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철거 업체가 서초구에 공사 전 제출한 계획서와 달리 철거 공사를 진행한 점을 포착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 조사 결과 당시 공사 현장엔 철거가 계획대로 진행되는지 감시하는 철거 감리인이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에 따르면 공사 근로자들은 “철거 공사 감리인이 공사가 시작된 이후 현장에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그러나 감리인 정모(87)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 현장에 나왔다”면서 “현장에 나오지 못할 땐 감리 보조로 사전 신고한 친동생이 대신 현장을 살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정씨의 주장대로 감리 보조가 현장에 있었던 것인지, 감리 보조가 현장 감리인을 대신할 수 있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 한편 서초구청은 지난달 17일 해당 건물에 대한 철거 심의를 진행하면서 감리인이 현장에 상주해야 한다는 조건 등을 달아 의결했다.

서초구청에 따르면 지난 5월 철거 업체는 해당 건물 층마다 지지대인 잭 서포트를 10여 개씩 설치하겠다는 내용의 계획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서초구가 사고 당일 전문가에게 의뢰한 1차 기초 조사에선 지지대가 설치되지 않은 점이 붕괴 원인으로 지목됐다.



경찰은 또 현장 근로자 등 공사 관계자들이 해당 건물의 붕괴 가능성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조사를 통해 현장 철거 업체 근로자들이 모인 단체 대화방에서 사고 20분 전쯤 “건물이 흔들린다” 등 건물 붕괴 가능성에 대해 언급한 사실이 확인됐다. 경찰은 공사 관계자들이 건물 붕괴 조짐을 파악하고도 이를 묵인하거나 방조한 것은 아닌지 조사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앞서 이번 사고가 발생한 잠원동 건물은 지상 5층·지하 1층 규모로 지난달 29일부터 철거 공사가 시작됐다. 이달 10일 철거가 완료될 예정이었으나 지난 4일 붕괴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인해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사고 이튿날인 5일 경찰·소방당국 등이 참여한 1차 합동 감식에선 철거 작업 중 가설 지지대 또는 지상 1~2층 기둥과 보가 손상돼 건물이 붕괴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감식단은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조만간 추가 합동 감식에 나설 계획이다.

서초구는 사고 원인을 공사 업체의 현장 안전조치 미흡이라고 보고 건축법 제28조 등에 따라 해당 건축주, 시공업체, 감리인 등을 경찰에 일괄 고발키로 했다고 5일 밝혔다.

경찰도 관련자들을 조사해 안전 관리 소홀 등의 책임이 있을 시 공사 관계자들을 형사 입건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용표 서울지방경찰청장은 8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해당 사고와 관련해 “현장 자료를 면밀히 분석하고 관계자들을 조사하고 있다”며 “합동 감식 결과 분석 및 추가 조사를 통해 사고 원인을 명백히 규명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