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고령화에 코로나에 빚도 산더미…잠재성장률 '비상'

by최정희 기자
2021.09.13 17:28:40

위기때마다 쭉쭉 미끄러지는 잠재성장률
자영업자 비중 많은 경제구조..코로나 위기때 취약
"ICT 등 기술혁신…여성·청년 취업 끌어 올려야"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감염병 위기가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을 2.0%까지 추락시켰다.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경제구조가 단기간에 잠재성장률을 0.4%포인트나 떨어 뜨렸다는 분석이다.

출산율을 높이거나 ICT업종을 중심으로 기술혁신을 하거나 여성·청년층 고용을 늘리는 등의 대대적인 혁신이 없다면 한 번 추락한 잠재성장률을 재차 끌어 올리기는 어렵다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13일 한국은행이 발간한 ‘코로나19를 감안한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 재추정’이란 제목의 BOK 이슈노트에 따르면 2019년~2020년 잠재성장률은 2년 전 2.5~2.6%로 추정됐는데 코로나19가 성장률을 0.4%포인트 갉아먹으면서 2.2% 내외로 낮아졌다. 올해와 내년에도 코로나19에 따른 악영향이 잠재성장률을 0.2%포인트 추가로 끌어내려 평균 2.0%의 잠재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측됐다.

한은이 추정한 잠재성장률을 살펴보면 2001~2005년까지만 해도 5.0~5.2%였다. 불과 20년만에 반토막 이하 수준으로 추락한 것이다. 정원석 한은 조사국 전망모형팀 과장은 “생산가능인구 감소 등 코로나19 위기 이전 이미 진행돼왔던 구조적인 요인의 영향도 있으나 상당 부분 코로나19 충격이 잠재성장률을 하락시켰다”고 밝혔다.

음식·숙박 등 대면서비스 폐업 등으로 관련 일자리 실업이 증가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자영업자를 포함한 비임금 인구 비중이 2020년 기준 24.4%로 미국(6.3%), 유로존(14.6%), 일본(10.0%) 등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자영업자 중 절반 가량인 43.2%가 도소매·숙박·음식 등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이 큰 업종들이라 잠재성장률을 단기간에 끌어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숙박·음식업종 취업자 수는 7월 현재 214만명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월 평균 230만3000명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잠재성장률 추이(출처: 한국은행)




가뜩이나 우리나라는 통계청 추정 결과 생산가능인구(만15~64세)가 2017년 3757만명에서 2067년 1784명으로 대폭 감소하고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이 2025년 20%, 2036년 30%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돼 2016년부터 노동부문이 잠재성장률을 계속해서 갉아먹고 있던 차였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 충격은 공급망 약화, 재택근무 확대로 인한 IT인프라 구축 등 조정 비용, 장기 실업 급증, 온라인 수업 확대·육아 부담 증가에 따른 여성들의 경제활동참가율 감소, 55~64세 고령층의 비자발적 실업 증가 등으로 잠재성장률 하락을 촉발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빚투(빚을 내 투자)로 인한 집값 등 자산가격 거품 현상이 심해지면서 소득 대비 집값이 급등한 현상 역시 젊은 세대의 결혼, 출산을 늦춰 생산가능인구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배병호 한은 거시모형부장은 “이런 부분은 단기적으로 잠재성장률에 나타나진 않겠지만 10년, 15년에 걸친 장기 전망에는 부정적인 요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은은 작년 말 보고서에서 코로나19가 결혼, 출산을 연기시켰고 그 여파가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국내총생산(GDP)에서 노동이나 자본을 제외한 총요소생산성도 둔화하고 있다. 총요소생산성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만 해도 연간 2% 안팎의 증가세를 보였는데 최근엔 1%로 추세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이는 노동, 자본 투입이 일정하다고 가정할 때 이전보다 생산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코로나19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점차 줄어든다고 해도 잠재성장률의 추세적인 하락세를 막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2025년 1.57%로 추락, 2030년에는 0.97%로 1%도 채 안 될 것으로 예측됐다. 2045년에는 0.60%로 추정된다.

한은은 잠재성장률을 개선하기 위해선 경제 구조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ICT, 그린에너지 등 신성장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같은 노동, 자본을 투입하더라도 생산 효율성을 높여 총요소생산성을 끌어올릴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또 고용여건이 취약해진 여성과 청년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는 정책적 노력도 나타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코로나가 남긴 상흔 효과를 최소화하고 신성장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기업의 투자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해나가지 않으면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것은 쉽지 않다”고 밝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규제 혁파, 연구개발(R&D) 투자를 위한 세제 지원 등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