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팩' 사냥나선 美공매도 세력…니콜라 침몰시킨 한덴버그도 동참

by방성훈 기자
2021.03.15 15:56:55

스팩 공매도, 연초 7.2억달러→27억달러로 3배 이상↑
처칠캐피털·XL플릿 등 유명세로 급등한 스팩 집중 타깃
공매도 전문업체들의 스팩 겨냥 폭로도 이어져
니콜라 추락시킨 힌덴버그…이번엔 로즈타운 정조준

(사진 =AFP)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 주식시장에서 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SPAC)에 대한 공매도가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다. 스팩에 대한 투자가 과열됐다면서 유명 펀드매니저 등이 주가 하락에 베팅하고 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4일(현지시간) 금융정보 분석업체 S3파트너스 자료를 인용해 스팩에 대한 공매도가 올해 초 7억 2400만달러에서 이날까지 약 27억달러로 3배 이상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공매도 세력의 타깃이 된 종목들은 유명 금융 인사들의 투자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를 추종하는 개미 투자자들이 몰리는 등 최근 몇 달새 급등한 스팩이라고 덧붙였다.

WSJ은 또 미 지수개발사 ‘Indxx’가 운영하는 스팩 주가지수가 2월 중순부터 3월 10일까지 약 17% 떨어졌는데 같은 기간 나스닥 종합지수는 약 7.3% 내렸다고 전했다. 스팩 주가 하락세가 더 가팔랐다는 얘기다.

스팩은 다른 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것을 목적으로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이다. 까다로운 기업공개(IPO) 절차와 시간을 줄이기 위해 M&A를 통해 상장을 추구하는 공식적인 우회상장 박식이다.

스팩에 초기 투자를 진행하는 헤지펀드는 구조적으로 큰 위험 부담 없이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개인 출자자들 역시 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며, 기존 IPO를 통해서는 얻을 수 없었던 합병 후 신규 상장주에 대한 지분 획득 선택권을 누릴 수 있다. 반면 이미 상장된 스팩 주식을 시장 거래를 통해 매입했다면 투자손실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다.

지난해부터 막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스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막대한 투자 자금이 스팩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WSJ에 따르면 지난해 스팩의 자금 조달 규모는 사상 최대 규모인 832억달러를 기록했다. 2년 전인 2018년 107억달러와 비교하면 667% 급증한 것이다. 올해도 지난 1월 17일 기준 157억달러 규모의 상장이 이뤄졌다.

이에 대형 헤지펀드부터 정치인과 스포츠계 인사들까지 너도 나도 스팩 설립에 열을 올리고, 이들이 관련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투자금이 몰리는 말그대로 ‘광풍’이 일기 시작했다.

이에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주 “유명 인사가 스팩을 후원하거나 투자한다고 해서 해당 스팩에 투자하는 것은 결코 좋은 생각이 아니다”며 경고하기도 했다.



실제 투자 전문가들 사이에선 스팩 투자 열기가 거품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공매도에 베팅하는 사례가 최근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개별 사례별로 살펴보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마켓인텔리전스는 페이스북 부사장 출신 차마트 팔리하피티야가 이끄는 소셜캐피털헤도소피아(IPOE)가 미 핀테크 유니콘 기업 소셜파이낸스와 합병할 예정인 스팩이 공매도의 타깃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스팩은 현재 발행 주식의 19% 이상이 공매도 됐다.

마이클 클레인 전 씨티그룹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처칠캐피털의 스팩인 CCIV의 공매도 비율도 이달 들어서만 두배 이상 증가해 약 5%로 집계됐다.

지속 불가능해 보이는 가격으로 폭등한 스팩도 공매도 대상이 되고 있다. 바이오 플라스틱 회사인 대니머 사이언티픽의 경우 스팩에 인수된 뒤 첫 6주 만에 주가가 3배 가량 뛰어 64달러까지 치솟았는데, 공매도된 주식이 1월 약 1%에서 최근 8.5%로 크게 늘었다. 이 회사의 주가는 현재 42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공매도 전문업체들의 폭로도 이어지고 있다. 전기자동차 업체 XL플릿의 주가도 공매도 전문업체인 머디워터스 폭로 이후 주가가 가파르게 하락했다. 머디워터스는 XL플릿이 판매량를 과장해 투자자들을 속였다며, 현재 시가총액이 20억달러에 달하지만 실제 기업가치는 7300만달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보고서가 공개된 지난 2일 XL플릿의 종가는 13.86달러로 전일대비 13.1% 급락했고, 지난 12일엔 12.79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수소차 제조업체 니콜라의 사기를 폭로해 유명해진 힌덴버그리서치는 전기트럭 스타트업 로즈타운모터스를 타깃으로 삼았다. 힌덴버그는 지난 12일 보고서를 통해 로즈타운이 주문·생산 실적을 부풀려 투자자를 속였다고 지적했다. 10만대 규모의 전기트럭을 선주문 받았다고 홍보했는데 거짓이며, 생산 일정도 제대로 맞추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10월 다이아몬드피크홀딩스 스팩과 합병해 나스닥에 상장했다. 보고서 발표 후 로즈타운 주가는 17% 폭락했다.

월가 공매도 베테랑으로 꼽히는 에두아르도 마르케스는 WSJ와의 인터뷰에서 “1990년대 중반 이후 미 뉴욕증시 상장 기업 수가 줄어드는 추세였는데 지난 해 이후 스팩을 통한 우회 상장이 급증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며 “지금 시장은 상장주, 특히 스팩 주식을 공매도 하기 좋은 기회를 주고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