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경제정책]대기업 대신 가계…임금 올리고 나랏돈 푼다

by박종오 기자
2017.07.25 15:36:12

[이데일리 신태현 기자]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관련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세종=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중소·중견 기업 이익을 근로자에게 나눠주면 세금을 감면하는 ‘성과 공유제’는 문재인 정부가 경제 정책 전면에 내세운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의 한 사례다.

소득 주도 성장은 분배를 개선해 성장을 이룬다는 ‘역발상’이 핵심이다. 수출 대기업 중심의 경제 성장에도 노동자·자영업자 등이 가져가는 소득 몫이 갈수록 쪼그라들자 경기 부진의 원인이 이 같은 분배 악화에 있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가계 소득을 늘리면 내수 소비가 살아나고, 소비 증가는 다시 기업 투자와 생산성 향상을 견인해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논리다.

25일 발표한 새 정부 5년 경제 정책 방향도 가계의 지갑을 두툼하게 하는 것이 최대 주안점이다.

가계 소득을 늘리는 가장 빠른 길은 기업이 가져갈 소득 몫을 가계에 좀 더 돌리는 것이다. 최저임금 시간당 1만원 달성,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상시·지속 업무에는 비정규직을 채용할 수 없도록 사용 사유제한 제도를 도입하는 것 등은 이런 이유에서다. 임금을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정부가 복지 확대, 사회 안전망 강화 등 재분배 정책을 통해 소득을 보충하는 방법이 있다. 새 정부 경제 정책 다수도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부는 연 17만 가구씩 공적 임대주택을 공급해 5년 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을 웃도는 임대주택 비율을 달성하고, 건강 보험 보장률을 70%로 끌어 올리는 등 주거비·의료비·교통비·통신비·교육비 등 생계비 경감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오는 2022년까지 고용보험 의무 가입 대상자 모두를 보험에 가입시키고, 실업 급여 보장성을 OECD 회원국 평균 수준까지 높이겠다는 로드맵도 내놨다. 0~5세 아동수당, 청년 구직촉진수당, 기초연금 및 장애인 연금 인상 등 생애주기별 소득 지원 제도도 재분배에 중점을 둔 방안이다.

이를 뒷받침할 실탄은 정부 재정이다. 정부는 향후 5년간 재정 지출 증가율을 경상 성장률(물가 상승 요인을 반영한 경제 성장률)보다 높게 유지할 계획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가 예상하는 경상 성장률은 4.9~5% 정도”라며 “5년 동안 총지출 증가율을 이보다 높게 관리하면서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지출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랏돈을 분배 개선에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확장적 재정 정책을 예고한 것이다.

정부가 소득 주도 성장과 함께 일자리에 정책 무게를 싣는 것은 고용이 줄면 결과적으로 가계가 가져가는 전체 소득은 감소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새 정부 경제 정책 방향에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이 상당수 담겼다.

정부는 고용영향평가에 따라 예산을 달리 배분하고 일자리 지원 세제 3대 패키지를 개편해 운영하는 등 정부 정책 수단인 예산·세제 등을 모두 일자리 중심으로 재설계하겠다고 예고했다. 공무원 일자리 17만 4000개 확충 등 굵직한 공약 사업도 일시적인 인구 증가로 구직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층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고용 알선, 직업 훈련 등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투자의 경우 재정 지출 증가율을 웃도는 수준으로 지출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번 문재인 정부의 첫 경제 정책 방향에는 규제 완화와 세금 감면을 통한 기업 투자 촉진이나 수출 기업 지원 등 과거 정부가 단골 메뉴로 내놨던 정책 과제는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를 공정 경쟁, 중소기업 중심의 혁신 성장이 채웠다.

정부는 하도급·가맹·유통·대리점 분야 불공정 행위를 없애기 위해 제도 개선 및 법 집행을 강화하고, 협업 전문회사 제도를 도입해 여러 중소기업이 공동 출자해 특수목적법인을 세우면 정부 정책을 우대해 적용하기로 했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이런 방침 역시 자영업자나 중소기업 노동자 소득 확충을 위한 수단으로 볼 수 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우리나라가 과거 수출 주도 성장 방식이 한계에 이른 상황에서 소득 분배 형평성을 높이고 소비를 늘려서 내수 주도 성장을 시도하는 것은 의의가 있다”면서도 “소득 주도 성장 정책으로 임금이 높아지면 일자리가 줄어 결과적으로 소득이 별로 늘지 못하는 등 우려되는 측면에 있어서 계획한 대로 성과를 이룰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고 평가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존 한국 경제를 견인하던 대기업에 관한 부분이 정책 방향에는 빠져 있다”면서 “대기업이 어떻게 하면 경제 성장에 기여할 수 있을지도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 정부 경제 정책 수립에 관여했던 학계 전문가는 “소득 분배와 최저임금 인상 안착을 위한 정책을 펴려면 재원 확보가 중요하다”면서 “결국 증세 대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