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전철 밟을 수도…초격차 기술력·소부장 생태계 시급"[만났습니다]
by김응열 기자
2023.03.13 17:51:34
■ 안진호 한양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日 반도체 누른 美…한국에도 재연할 수도" 우려
"초격자 기술만이 살 길…강력한 소부장이 받쳐야"
"정부 지원 마중물…삼성·SK가 앞장서주길 바라"
[이데일리 김응열 기자] “(불황을 겪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업황은 금방 살아납니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미국입니다.”
한양대 반도체 산학협력체인 ‘한양스마트반도체연구원’을 이끌고 있는 안진호 한양대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13일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미국이 우리 반도체 기업들을 적으로 간주할 위험이 있다”며 이렇게 경고했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통해 패권을 쥐려는 미국이 과거 미·일 반도체 협정 등을 통해 일본 반도체 산업을 견제했듯, 우리 기업을 상대로도 이 같은 행동에 언제든 벌일 수 있다는 게 안 교수의 진단이다. 일본은 소재, 대만은 파운드리 강자인 반면 메모리 강자인 우리의 경우 마이크론 등 미국 기업들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고 판단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안 교수는 대체할 수 없는 기술력을 확보해 우리만의 입지를 다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뿐 아니라 이들 기업에 부품과 장비를 납품하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협력사들의 성장이 먼저라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정부 지원과 더불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국내 반도체 생태계 육성에 힘을 실어주길 희망했다.
안 교수와의 인터뷰는 서울 성동구 한양대 내 한양종합기술연구원에서 약 60분간 이뤄졌다.
|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안진호 한양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겸 스마트반도체연구원장이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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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시장조사기관은 반도체 시장이 2028년까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지금의 불경기는 2분기면 끝날 거라고 봤다. 지금은 반도체가 들어가지 않는 제품군이 없다. 자동차에도 들어간다. 챗GPT 외에도 반도체가 다방면으로 쓰이는 점을 보면 글로벌 반도체 불황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우리나라는 상황이 좀 다르다. 우리 기업들은 메모리 반도체에 강하다. 그러나 미국에도 마이크론이 있다. 대체할 기업이 있는 것이다. 일본은 소재, 대만은 파운드리 강자다. 미국이 외면할 수 없다. 그러나 메모리라는 강점은 한국과 미국이 겹친다. 더구나 삼성은 미국 퀄컴이 있는 팹리스도 키우려 하고 파운드리도 한다. 미국으로선 한국이 눈엣가시다.
-△배제할 수 없다. 1980~90년대 반도체산업을 주름잡던 일본을 무너트린 배경에는 사실 미국의 계략이 있지 않나. 당시 일본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 1등이었다. 미국은 이게 불만이었다. 반도체를 발명한 건 미국인데 오히려 일본이 시장을 장악하고 미국 기업은 쇠락의 기로에 놓였다. 그래서 미국이 미일 반도체 협정 등으로 일본 반도체 기업을 싹 죽인 거다. 일본과 같은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게 개인적인 견해다.
-△결국 기술력 확보다. 누구도 견제할 수 없는 기술력이 필요하다. 파운드리를 대만 TSMC가 독점하고 일본이 막강한 소재분야 경쟁력을 가진 것처럼 대체하지 못할 수준의 기술력이 있어야 한다. 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만의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 이들을 받쳐줄 협력사들이 성장해야 한다. 외국에 의존하다 보면 일본 수출 규제 같은 변수에 언제든 휘둘릴 수 있는 것도 문제다. 우리나라의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생태계를 육성해야 한다.
|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안진호 한양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겸 스마트반도체연구원장이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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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장비 기술력이 전보다는 개선됐지만 여전히 외국 기업이 시장을 꽉 잡고 있고, 특히 EUV는 기술력이 크게 올라오지 못했다. 이런 탓에 우리나라도 EUV 노광장비를 개발하자는 얘기가 꾸준히 있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반대다. 기술 난이도가 너무 높다. 100년 동안 돈을 쏟아부어도 성공하기 힘들다. 일본의 노광장비 기업 니콘과 캐논이 과거에 EUV 노광장비를 개발하려 했으나 포기했다. 결국 네덜란드의 ASML만 살아남았다. 개발도 양산도 모두 어려워 투자리스크가 크다. 더욱이 EUV 노광장비에 필요한 각종 부품 제작에도 수준급이 기술이 필요하다. 반도체 생태계 전반적인 역량이 따라줘야 한다는 뜻이. 설령 EUV 노광장비 개발에 성공해 만든다 해도 판매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후발주자인 탓에 시장에서 자리잡기가 힘들다.
-△EUV 노광장비보다는 기술 난도가 비교적 낮은 EUV 검사장비가 있다. 반도체 제조 과정 중에서 각 공정이 잘 이뤄졌는지, 문제는 없는지 파악할 수 있는 필수장비다. 미세공정에서 반도체 생산성을 높이려면 이런 검사 장비가 필요하다. 일본 레이저텍, 미국 KLA텐코 등이 시장의 강자이지만 우리나라에도 관련 기업이 있다. EUV 검사는 비집고 들어갈 만한 구멍이 아직 있어 이쪽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
-△정부 차원의 육성이 받쳐줘야 한다. 미국, 대만 등 해외 각국이 자국 반도체 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한동안은 그런 지원을 해야 한다. 마중물 역할을 하는 정부 투자와 더불어, 우리나라 반도체업계 최상단에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국내 반도체 소부장 생태계 육성에 앞장서줬으면 한다. 기술력이 개선된 부품, 장비를 협력사들이 개발해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이를 바탕으로 더 앞선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
반도체 생태계가 클 시간도 충분히 기다려줘야 한다. 남들이 30년 동안 투자해 일궈낸 성과를 하루아침에 따라잡을 수는 없는 일이다. 생태계의 기술력이 오를 때까지 꾸준히 지원하며 인내할 필요가 있다.
◇= △서울대 금속공학과 학·석사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재료공학과 박사 △일본 NEC 연구소 연구원 △한양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한국연구재단 나노융합단장 △한양대 나노컨버전스리더양성 BK사업단장 △한양대 EUV-IUCC 센터장 △한양스마트반도체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