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선동에 '대선불복' 시위대 美의사당 습격…"반란·쿠데타" 맹비난
by김정남 기자
2021.01.07 14:36:44
트럼프 지지자들, 美 의사당 난입 최악 사태
의회경찰 총격에 1명 숨지는 등 4명 목숨 잃어
'민주주의 맹주' 심장 유린 당해"…전세계 경악
트럼프는 대선 불복…"승리 도둑 맞아" 주장
|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연방의회 의사당의 상원 회의장 밖 복도가 흰 연기로 가득 찬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의회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제공) |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수도 워싱턴DC에서 열린 대선 결과 인증 반대 집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제공) |
|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이준기 기자] “이번 반란(insurrection) 사태는 미국의 평판에 엄청난 손상을 줄 수 있다. 가슴이 아프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공화당 소속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급히 내놓은 성명의 일부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이 대선 결과에 불복해 급기야 의사당 안까지 난입한 초유의 사태를 두고 통렬하게 비판한 것이다. 부시 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이후 일부 정치 지도자들이 보여준 무모한 행동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며 “미국의 제도와 전통, 법치에 대한 존경이 부족한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에 직격탄을 날렸다.
‘민주주의 국가의 맹주’를 자처하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서 미국 민주주의 상징인 의사당이 짓밟히자 미국은 물론 전세계가 분노하고 있다. 공화당마저 ‘쿠데타’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날 의사당 난입 사태로 인해 의회 경찰이 쏜 총에 맞은 시위대 여성 1명을 비롯해 총 4명이 숨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결과 불복 몽니가 낳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참사라는 평가다.
이날 오후 1시께 워싱턴DC 의사당 인근. 오전부터 곳곳에서 차분하게 이어졌던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의 시위는 오후 들어 분위기가 바뀌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인근 공원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재차 대선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연설한 후 시위대는 상·하원 합동회의 시간인 오후 1시에 맞춰 의사당으로 행진했다. 합동회의를 통한 선거인단 개표 결과 인증은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 취임 전 남은 마지막 법적 관문이다. 원래는 형식적인 절차였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불복선언 탓에 인증 절차에 관심이 쏠렸다.
터질 게 터졌다. 회의 개시 즈음 수백명이 주변 바리케이드를 넘어 의사당으로 진입하면서 난입 사건이 시작됐다. 이들은 경찰의 제지를 뚫고 순식간에 의사당 내부로 진입했다.
유리창을 깨고 외벽을 타고 올라 의사당 안으로 난입했으며 회의장까지 점거했다. 일부 시위대는 상원 회의장 의장석을 차지하고 앉아 “우리가 승리했다”고 소리쳤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사무실에 들어가 책상 위에 발을 올린 사진을 자랑스레 SNS에 올린 이도 있었다. 난입한 사위대를 저지하기 위한 경찰이 쏜 최루가스로 의사당 중앙 홀은 연기가 자욱했다. 의회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한 여성이 총을 맞고 쓰러졌으며 이 여성은 끝내 숨졌다. 숨진 여성은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 거주하는 애슐리 배빗으로 공군 출신의 열혈 트럼프 지지자로 알려졌다. 그 외에도 추가로 3명의 더 사망했다고 로이터 등은 전했다. 시위대와 대치하는 과정에서 경찰들 역시 여럿 부상했다.
난동은 4시간 넘게 이어졌다. 이날 오후 5시가 넘어서야 시위대는 의사당 건물 밖으로 쫓겨났다. 하지만 급파된 주방위군 등과 계속 대치하며 긴장감을 키웠다. 로이터 등에 따르면 현재 경찰은 의사당 난입과 관련해 52명을 체포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시위대를 두둔하며 비난을 샀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법과 질서를 지켜야 한다”면서도 “여러분의 상처를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선거(대선)를 도둑 맞았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그의 장녀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선임보좌관은 트위터를 통해 시위대를 “애국자들”이라고 칭해 논란을 빚었다. 이방카 보좌관은 역풍이 거세시자 결국 해당 트윗을 삭제했다. 급기야 트위터는 트럼프 대통령의 계정을 12시간동안 정지시키기로 했다.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미국을 넘어 전세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의사당 난입을 실시간 중계한 CNN은 이날 홈페이지 메인에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미국인 학살(American Carnage)로 끝났다”라고 썼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선동한 폭도들이 의사당을 휩쓸었다”며 “혼돈과 혼란이 미국 민주주의 심장에 충격을 가했다”라고 전했다.
미국 의회는 시위대 난입 상태로 중단된 회의를 6시간 만에 재개해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승리 인증문제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 트럼프 대통령 소속 정당인 공화당에서도 시위대에 대한 비난이 이어졌다. 당연직 상원 의장으로 상·하원 합동회의를 주재하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시위대를 향해 “여러분은 이기지 못했다. 폭력은 결코 승리하지 못한다”며 “자유가 승리한다”고 비난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도 “우리는 무법에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며 “그들은 우리 민주주의를 훼방하려 했지만 실패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이 폭력배들을 자극하는 음모이론을 조장하고 의사당으로 가라고 촉구했고 부추겼다”며 “이 오점은 쉽게 씻겨지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의 마지막이자 끔찍한 유산”이라고 맹비난했다.
국제사회 역시 일제히 규탄에 나섰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트위터에 “충격적”이라며 “민주적인 선거 결과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미국은 전세계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곳”이라며 “질서 있는 정권 교체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폭력은 절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성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