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질권설정해 전세금 빌리고 안갚은 세입자…法 "사기" 실형

by남궁민관 기자
2020.09.10 15:44:31

질권설정승낙서 작성 사실 잊은 집주인
임대차계약 해지 후 보증금 세입자 돌려줬지만
주식 투자했다가 날리고 전세대출 못갚아
法 "사기 맞다"…2심 징역 1년 6월 선고 법정구속

[이데일리 남궁민관 기자] 임대차 계약 종료에 따라 집주인으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은 세입자가 이를 빌린 금융기관에 갚지 않은 데 더해 미상환 사실 자체도 집주인에 알리지 않았다면 사기죄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집주인은 전세보증금 마련을 돕기 위해 세입자 대출시 임대보증금을 직접 변제하겠다는 내용의 질권설정승낙서를 작성해 준 사실을 잊고 있었는데, 세입자가 이를 악용했다는 판단에 따른 결과다.

7일 서울 시내 한 부동산중개업소.(사진=연합뉴스)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윤강열)는 10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A씨는 2015년 12월 서울 압구정 한 아파트 소유자인 B씨와 전세보증금 5억원, 임대기간 2년으로 하는 임대차계약을 체결했다. A씨는 전세보증금 중 4억원을 당시 동부화재해상보험(현 DB손해보험) 전세자금 대출로 조달했으며, B씨는 이에 협조하기 위해 동부화재해상보험에 임대보증금을 직접 변제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질권설정승낙서를 작성했다.



문제는 양자 간 2017년 7월 임대차계약을 합의 해지한 뒤 불거졌다.

B씨는 앞서 질권설정승낙서 작성 사실을 잊고 전세보증금을 전액 A씨에게 상환한 것인데, 당시 A씨는 반환받은 전세보증금 대부분을 선물옵션에 투자했다가 거액의 손실을 입으며 동부화재해상보험에 전세대출금 4억원 전액을 변제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동부화재해상보험은 B씨의 아파트를 가압류하고 B씨를 상대로 민사소송까지 제기해 승소했다.

재판에 넘겨진 A씨는 1, 2심에서 모두 사기죄가 인정돼 실형을 선고 받았다. A씨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으면서 전세대출금의 미상환 사실을 B씨가 알릴 신의칙상 고지의무를 어겨 B씨를 기망했다는 동일한 판단이다. 1심은 징역 2년을 선고했지만, 피해회복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법정구속하지는 않았다.

2심 재판부는 “A씨가 임대차 계약을 합의해지하고 B씨로부터 이 사건 전세보증금을 반환받음에 있어 전세대출금을 상환하지 않은 사실을 B씨에게 고지할 법률상의 의무가 있고, 이를 고지하지 않은 채 전세보증금 전액을 지급받은 행위는 B씨를 기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질권설정승낙서 작성 사실을 잊은 B씨의 책임에 대해서는 “임대차계약 체결일로부터 1년 6개월여가 경과한 시점에서 B씨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며 “반면 A씨는 전세대출 채무를 상환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이를 변제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미리 고지할 법률상 의무가 인정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