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싫고 제재 두렵다"…러시아 떠나는 젊은 인재들

by이현정 기자
2022.03.21 15:42:15

전쟁반대·경제악화 우려로 출국 행렬 이어져
IT·미디어 산업 종사하는 젊은층서 두드러져
루블화 폭락으로 해외생활 어려움 호소

[이데일리 이현정 인턴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정부에 대한 불만과 경제 악화에 대한 우려가 심화하면서, IT·미디어 산업에 종사하는 많은 젊은 인재들이 러시아를 떠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한 러시아인 가족이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에 도착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AFP)
2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도시에 거주하는 젊은 고급 인력을 중심으로 러시아를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그 이유로 정부의 우크라이나 공격 및 여론통제에 대한 반감과 서방의 경제 제재에 따른 위기감을 꼽았다.

이런 현상은 주로 원격근무가 용이한 IT·미디어 산업의 프리랜서 직업군에서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경우 수입이 해외 고객과 연계돼 있어 외국과의 단절로 큰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키프로스에 본사를 둔 비디오 게임 개발 회사의 부분 소유주인 이반은 “(러시아를 떠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쟁에 반대하고 있다. 우리는 세계와 연결돼 있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출국 행렬에는 언론인, 활동가와 블로거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와 관련해 ‘전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도 금지할 정도로 표현의 자유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루블화의 가치가 폭락하면서 이들이 해외 생활도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고 NYT는 짚었다. 비자·마스터 카드와 온라인 결제 서비스 업체 페이팔이 러시아에서 서비스를 중단하면서 러시아 국영 미르카드만 아르메니아를 비롯한 극소수의 나라에 전자 결제 방식으로 사용 가능한 상황이다.

구호 단체에서 일하는 미라는 “남자친구와 러시아를 떠나기 전날 달러화를 출금하기 위해 세 시간 동안 ATM을 돌아다녔지만 모두 실패했다. 경호원을 동반한 사람이 새치기를 하고 잔고가 바닥날 때까지 5000달러(약 607만원)씩 인출하는 것을 봤다”라며 “매우 위험한 상황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러시아를 떠난 이들 중 대다수는 아르메니아, 조지아, 터키를 향했다. 특히 소련의 일부였던 아르메니아는 이번 전쟁에서 중립을 선언하면서 러시아인이 비자와 여권 없이 최대 6개월간 머무를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전쟁 발발 전에는 아르메니아에 등록된 러시아인이 3000~4000명 정도였지만, 한 관계자는 침공 이후 2주간 이와 비슷한 인원이 매일 입국했다고 전했다. 이 중 수천명은 아르메니아에서 또 다른 나라로 이동했지만 지난주 기준 2만여명의 러시아인이 여전히 아르메니아에 남아있는 것으로 추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