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최정희 기자
2021.05.25 16:02:29
서머스 "연준, 긴축을 위한 절차 밟아가야"
연방기금금리 0.06% 수준..정책 금리 중간치보다 낮아
"단기금융시장에서 유동성 넘쳐..역레포 금리 올려 흡수 전망"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치솟는 원자재 가격, 구인란에 따른 임금 상승 등 미국 내 인플레이션 우려를 막으려면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통화 긴축으로 나설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연초 인플레이션 우려로 제닛 옐런 미 재무장관과 설전을 벌였던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의 주장이다. 연준 내에서도 인플레이션을 간과하기 어렵다는 매파적 의견도 가시화되고 있다.
한편에선 단기금융시장 내 유동성이 넘쳐 실질 실효금리가 연준의 정책 금리보다 너무 낮게 거래, 연준의 통제 범위에서 벗어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연준의 유동성 죄기 대책이 나올 것이란 전망이다.
래리 서머스는 24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인플레이션은 현실(The inflation risk is real)’이란 제하의 오피니언을 통해 “미국의 주된 위험은 6개월 전만 해도 저성장, 높은 실업률, 디플레이션이었지만 지금은 경기 과열, 인플레이션”이라며 “이는 추측이 아니다. 물가상승률은 1분기에 연율 7.5%를 기록했고 기대인플레이션율은 한 세대 전에 물가연동국채 도입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고 밝혔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재고 감소, 물가지수에 포함되지 않은 높은 집값, 기대인플레이션 상승이 실제 행동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하면 연준과 조 바이든 행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지 않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서머스는 인플레이션은 정권을 바꿀 만큼 힘이 크다고 지적한다. 그는 “진보주의자들은 1968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 1980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당선에 인플레이션이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 과열, 인플레이션 우려를 억제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성장을 촉진하고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는 친환경 투자, 저소득·중산층 가구를 지원하는 방법이 있다며 통화 긴축, 실업 급여 지원 종료, 장기 공공투자를 제안했다.
특히 그는 “연준 등 정책입안자들이 ‘경기 과열’이 경제의 주된 단기 위험임을 명시화해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억제해야 한다”며 “긴축을 위한 섬세한 절차를 밟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연준의 정책 방향 변화를 행정부가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달러 강세 지지 등이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유지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점도 주장했다.
연준은 금리를 2023년말까지 올리지 않겠다고 표명했지만 연내 테이퍼링(자산 매입 규모 축소) 가능성은 높아지고 있다. 19일(현지시간) 공개된 4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서 일부 참석자들은 “경제가 FOMC 목표를 향해 계속 빠르게 진전하면 자산 매입 속도를 조정하는 계획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게 적절하다”고 밝혔다.
‘매파’로 불리는 에스더 조지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이날 심포지엄 연설에서 “인플레이션 위험을 간과하지 않겠다”며 “엄청난 규모의 재정 부양책이 시행됨에 따라 새로운 통화정책 프레임을 만들 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흐름이 전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연준은 대공황을 비롯해 경기가 살아나려고 할 때 긴축 정책을 시행했다가 경제 자체를 침체로 몰아넣었던 경험이 여러 번 있다. 그로 인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연초 경제지표를 확인한 후 통화정책을 변경하는 ‘후행적 통화정책’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통화정책이 역대급 재정정책 확대와 맞물리면서 인플레이션 우려를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편에선 연준의 월 1200억달러 채권 매입과 제로 금리 정책이 단기 금융시장의 유동성 과잉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따라 연준이 유동성 죄기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 연방기금금리는 0.06%로 연준의 정책 금리 0~0.25%의 중간치보다 낮다. 켈시 거슨 모건스탠리 전략가는 “연방기금금리가 0.05%까지 내려가게 되면 연준의 조치가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단기금융시장에 유동성이 넘치는 이유는 연준이 매월 1200억달러의 채권을 매입하면서 유동성을 푸는 데다 재무부에서 경기부양을 위해 현금을 지급하고 은행 예금이 머니마켓펀드(MMF)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테레사 호 JP모건 전략가는 “4월 현재 펀딩 시장에서 7510억달러의 공급과 수요 격차가 있다”며 수요가 넘치면서 자금을 맡길 공급처를 먼저 잡는 의자게임이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연준은 지난 21일 3690억달러의 역레포(reverse RP·역환매조건부채권)를 발행해 자금을 흡수했다. 2017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또 은행 등이 연준에 맡길 수 있는 자금 한도를 300억달러에서 800억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FT는 “다음 단계는 지급준비금에 이자를 높이거나 역레포의 금리를 높이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토머스 시먼스 제프리 이코노미스트는 “연준은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유동성 문제를) 경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