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TPP는 지류, FTAAP는 큰 강" 발언 배경은?(종합)

by피용익 기자
2013.10.07 23:23:40

[발리=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지류(支流)에, 아태자유무역지대(FTAAP)를 큰 강(江)에 각각 비유해 주목된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인도네시아 발리를 방문 중인 박 대통령은 이날 소피텔 호텔 정상 전체회의장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첫 세션에서 ‘다자무역 체제 강화를 위한 APEC의 역할’이라는 선두발언을 통해 역내 지역통합 논의의 조화를 강조하며 FTAAP를 언급했다.

박 대통령은 “APEC 내 다양한 지역통합 논의들이 투명하게 이뤄지고 모든 나라들이 공평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며 “이것은 우리가 목표로 하는 FTAAP를 실현하는 여건 조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아태지역에서는 여러 논의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이지만, 각각의 논의가 지류라면, FTAAP는 큰 강에 비유할 수 있다”며 “우리는 다양한 지류들이 큰 강으로 향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차원의 무역자유화와 주변 6개국의 양자 자유무역협정(FTA)이 RCEP로 발전하고, 4개국에서 출발한 협의가 12개국이 참여하는 TPP로 이어진 점을 언급하면서 “이러한 여러 논의가 높은 수준의 FTAAP를 달성하기 위한 주춧돌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RCEP는 중국·호주가 주도하는 경제통합체인 반면 TPP는 미국과 일본이 추진하고 있는 자유무역지대다. FTAAP는 21개 APEC 회원국 전체가 참여하는 경제통합 모델로 2004년 APEC 기업인자문위원회를 통해 장기 목표로 처음 제시됐다.

그동안 통상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TPP와 RCEP를 수렴해 FTAAP로 이어지도록 하는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해 왔다. 박 대통령의 이날 연설이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이에 대해 안총기 외교부 경제외교조정관은 “박 대통령의 발언은 APEC 내에서 TPP, RCEP, 한·중·일 등이 서로 따로따로 가서는 안 되고, 결국은 APEC 전체가 FTAAP가 되기 위해선 이것들이 주춧돌이 돼야 한다는 메시지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역내의 여러가지 무역자유화를 위한 노력들이 서로가 다 한꺼번에 모여서 ‘빌딩 블록’이 돼서 나중에 수준이 높은 FTAAP로 가야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와 관련,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APEC 정상회의 기간 비공식 리더십회의, 최고경영자회의(CEO 서밋), 비즈니스자문회의 대표 간담회 등에 잇따라 참석한 자리에서 FTAAP를 설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이 TPP 참여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은 채 FTAAP를 강조함에 따라 우리 정부의 다자무역 전략이 과연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우리나라는 현재 RCEP에 참여하고 있으며 TPP 참여에는 다소 유보적인 입장이다. 박 대통령이 이번 APEC 정상회의에서 TPP 참여 선언을 할 것이란 관측도 있었지만, 박 대통령은 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고 FTAAP를 궁극적인 목표로 제시했다.

다만 박 대통령이 이날 캐나다, 멕시코, 페루 등 TPP 참여국들과 개별 양자회담을 가진 것은 향후 TPP 참여 가능성에 대비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박 대통령은 비록 TPP에 대해 공식적인 관심 표명은 안 했지만, 참여국들과의 FTA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설령 TPP가 가동된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참여할 때의 비용을 줄이고 걸림돌을 미리 제거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수석의 설명만 놓고 보면 우리 정부는 TPP 가동을 염두에 두고 참여국들과의 개별 FTA 협상을 통한 사전 작업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오는 9~10일 브루나이에서 개최되는 ASEAN+3(한·중·일) 및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도 브루나이, 싱가포르, 호주와 양자회담을 갖고 협력 증진 방안을 논의한다. 모두 TPP 참여국들이다.

그러나 안 조정관은 TPP보다는 FTAAP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여러 국가와 FTA를 동시다발적으로 체결할 때 각 국가의 복잡한 절차와 규정으로 인해 효과가 저하되는 ‘스파게티 볼’ 현상을 언급하며 “여러가지를 맺다보면 조금 복잡해진다”며 “다자무역체제가 그래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는 RCEP에 참여하고 TPP 참여 여부를 타진하는 한편 궁극적으로는 아태지역에서 가장 확대된 FTA인 FTAAP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