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혁명' 임박했나‥美은행 가상화폐 '올인'(종합2보)

by안승찬 기자
2015.12.04 15:12:17

골드만삭스, 가상화폐 결제시스템 특허 출원
"단순 송금 뿐 아니라 주식 채권 거래도 가능"
비트코인 기술 활용..금융회사 역할 축소 예상
글로벌 IB 기술표준 작업 착수.."2022년까지 23조원 투자"

(사진=AFP)
[이데일리 안승찬 기자] 세계 금융시장을 이끌어가는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IB)들이 가상화폐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단순히 사업을 확대하는 차원이 아니다. 가상화폐의 거래 원리가 기존의 전통적인 금융시스템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가상화폐가 전세계 금융산업을 송두리채 바꿔놓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의 대표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가 최근 ‘SETL코인’이라는 이름의 가상화폐를 위핸 결제시스템과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다고 보도했다.

“새로운 시스템을 이용하면 즉각적인 송금과 결제가 가능하다”고 골드만삭스는 설명했다. 특히 골드만삭스는 가상화폐를 통해 단순 송금뿐 아니라 주식과 채권까지 거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골드만삭스뿐이 아니다. 씨티그룹, HSBC, JP모건 등 30개 글로벌 투자은행은 지난 9월 ‘R3CEV컨소시엄’을 발족하고 가상화폐의 송금·결제 시스템 개발과 국제표준화 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미국의 글로벌 투자은행은 2022년까지 가상화폐 시스템 구축에 200억달러(약 23조1500억원)을 투자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골드만삭스의 특허는 ‘블록체인(blockchain)’이라고 불리는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블록체인은 가상화폐 결제시스템의 핵심 기술이다.

전통적인 금융권의 시스템은 거래장부를 안전하게 보관하는 게 가장 중요한 임무다. 예를 들어 100만원을 은행에 입금했다는 거래장부가 확인돼야 100만원을 인출할 수 있다.

그래서 금융회사는 거래장부에 이중삼중의 보안장치를 단다. 거래장부를 얼마나 안전하게 관리하느냐가 금융사업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블록체인 보안은 접근 방식이 완전히 반대다. 암호를 걸고 꽁꽁 숨겨놓는 대신, 오히려 거래장부의 내용을 전체와 공유한다. 데이터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안전성이 더 높아진다는 논리다.

A와 B간의 송금거래를 가정할 경우 기존 금융시스템은 은행이 보유한 A와 B의 거래장부와 일일이 대조하고 틀림이 없으면 거래가 성사된다. 성사된 거래는 다시 거래장부에 기록하고 은행이 보관한다. 보관한 거래장부와 대조해서 ‘거래 성사가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금융회사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가상화폐가 쓰는 블록체인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거래당사자인 A와 B, 금융회사뿐 아니라 연결된 수많은 사람의 컴퓨터에 거래장부가 저장된다. 이런 ‘블록’ 거래장부가 수없이 발생하고, 컴퓨터 시스템은 인터넷을 이용해 시시각각 모든 금융거래의 블록을 서로 대조해 오류를 고치고 수정하면서 안정성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전통적인 방식에서는 누군가 은행이 가지고 있는 거래장부를 해킹해서 조작하면 모든 금융거래가 엉망이 된다. 하지만 블록체인 방식에선 한명이 장난을 칠 수 없다. 수많은 블록과의 대조를 통해 오류가 그때그때 수정되기 때문이다. 무한히 많은 거래장부가 공유되고, 정부의 공유를 통해 역설적으로 보안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발상을 뒤집은 블록체인 기술은 비트코인을 처음 만든 익명의 개발자 사토시 나카모토가 만들었다. 그는 지난 2008년 10월 암호화 기술과 관련한 한 커뮤니티에 ‘비트코인:P2P 전자 화폐 시스템’이라는 논문에서 블록체인 개념을 공개했다. 난생 처음 보는 아이디어에 사람들은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사토시 나카모토는 두달 이후 가상화폐 비트코인을 선보며 자신의 이론이 실현 가능한 것임을 입증해 보였다.

주혜원 국제금융센터 애널리스트는 “블록체인 기술은 높은 보안성과 속도개선뿐 아니라 비용도 절감할 수 있어 성장잠재력이 상당하다”며 “앞으로 금융권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FT는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의 밑바탕에 있는 블록체인 시스템은 전세계 결제방식을 혁명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열린 한 회의에서 “주요 글로벌 은행들이 공동으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송금·결제시스템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