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초도 안 때렸다고? 태권도 시합이 1분30초인데…"
by김보겸 기자
2020.05.26 15:35:53
동부지법, 26일 김모씨 등 3명 결심공판
CCTV 영상에 찍힌 '40초' 둘러싸고 공방
"실제 폭행 40초도 안 돼" vs "충분한 시간"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태권도 유단자들이 일반인을 폭행, 사망케 한 ‘클럽 폭행 치사’ 결심 공판에서 ‘40초’를 둘러싼 공방이 벌어졌다.
26일 서울동부지법. 클럽에서 시비가 붙은 20대 남성을 집단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살인 및 상해치사)를 받는 김모·이모·오모(이상 21세)씨 측은 “실제 폭행 시간이 40초도 되지 않는 등 우발적인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태권도 유단자들이 일반인을 사망할 정도로 때릴 때 결코 짧지 않은 시간 아니냐”며 반론을 제기한 것이다.
피고인들은 모두 태권도 4단 유단자다. 이 사건은 지난 1월 서울 광진구의 한 클럽에서 이씨가 피해자의 여자친구에게 “이쪽으로 와서 놀자”며 팔을 잡아 끌어 피해자와 시비가 붙은 것이 발단이 됐다. 이후 피해자를 클럽 밖 상가로 데려가 김씨와 오씨가 폭행에 합세해 피해자는 결국 사망했다. 상가 인근 폐쇄회로(CC)TV 영상에 따르면 이들이 피해자를 끌고 가 상가에 들어갔다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40초다.
피고인들은 상가 안에서의 폭행이 1분도 채 되지 않았다며 살인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상가 안으로 들어가는 시간과 폭행을 마친 후 걸어서 밖으로 나오는 시간을 포함하면 실제 폭행 시간은 40초보다 짧아 그 사이에 살인 고의가 생기는 건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주범으로 지목된 김씨의 변호인은 “1분 이내에서 순간적이고 우발적으로 벌어진 이 사건으로 과도한 중형을 부과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며 “최대한 선처해달라”고 호소했다. 김씨는 상가 안에서 이미 맞고 쓰러진 피해자의 얼굴을 발로 차는 등 결정적 가격을 한 혐의를 받는다.
피해자와 최초 시비가 붙었지만 상가 안에서 폭행은 없었다는 이씨는 ‘왜 상가 안에서 김씨와 오씨가 피해자를 때리는 것을 말리지 않았느냐’는 재판부 질문에 “너무 짧은 시간이었고, 다른 사람을 때려본 적이 없는 친구들이 일반인을 때리는 모습을 보고 당황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말리지 못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재판부의 생각은 달랐다. 재판부는 “태권도 한 라운드(경기) 시간이 1분 30초정도인데, 피고인들은 그 시간 안에 수많은 타격을 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 아니냐”라며 “40초라는 시간은 그렇게 짧지 않은데 말릴 틈이 없었다는 것이냐”라고 되물었다. 이씨는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검찰 역시도 이씨에 “이미 피고인은 상가에 들어가기 전에 피해자를 발로 차서 넘어뜨렸는데, 갑자기 놀라서 말리지 못 했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며 “정말 순식간이라서 (말릴)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냐”라고 반문했다.
결정적 가격을 가리기 위한 질문에 피고인이 얼버무리자 재판부는 호통을 쳤다. 재판부는 상가 안에서 피해자의 얼굴 부분을 ‘하이킥’으로 찬 오씨와, 오씨의 하이킥을 맞고 쓰러진 피해자의 얼굴을 ‘사커킥’으로 걷어찬 김씨의 가격 중 누구의 발차기가 더 강했느냐고 물었다. “모르겠다”고 답변한 오씨에 재판부는 “본인 행위를 모면하려는 건 알겠지만, 운동하는 사람답게 구체적으로 제대로 이야기를 하라”고 꼬집었다.
또한 재판부는 이들이 태권도 시합 때 실격될 수 있는 행위를 길거리 싸움에 적용했다는 점도 비판했다. 재판부는 “태권도 시합 때 얼굴을 때리는 행위는 반칙이고, 쓰러진 상대선수를 가격하는 건 때에 따라 실격도 될 수 있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실제 대련 때도 보호장구를 갖춘 채 맨발로 임하는데 사건 당시 피고인들은 가죽구두를 신었다”며 “이 경우 충격의 크기가 세다는 것 예상하지 않았느냐”고 질책했다.
이날 검찰은 이들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자신들의 가격이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집단으로 폭행하고 쓰러진 피해자를 방치한 채 현장을 떠나 고의가 인정된다는 이유에서다. 선고는 다음 달 25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