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일자리 공약… ‘하야 각서’부터 써라

by김화균 기자
2017.01.25 13:24:22

[이데일리 김화균 기자]

‘나는 만져보지도 못한 거 같은데. 참. 어딜 가 있는 건지. 흔적이라도 남기질 말든가. 흔적은 남기고 바람같이 사라진 녀석. 그게 너였지. 그래 그게 너였어. 이 월급아.’

SNS 스타인 하상욱 시인의 ‘도대체 어디를 간 거니’란 제목의 시다. 25일은 대부분 직장인의 월급날. 지인 A씨가 카톡으로 보내온 것이다. 급여가 계좌에서 살짝 흔적만 남긴 채 곧 실종되는 월급쟁이의 팍팍한 삶을 한탄한 것이다.

퀴즈 하나 풀어보자.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은? 여러 답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줬다 뺏는 사람’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다. 나는 지난해 11월 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50여일 ‘백수생활’을 했다. 그리고 11월 25일, 그리고 12월 25일 ‘혹시나’ 하며 계좌조회를 해봤다. ‘역시나’ 월급은 들어오지 않았다. 일자리가 있다는 게, 그래서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했던 지를 절감했다.

대통령 선거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앞다투어 “저요 저요” 를 외치며 크건 작건 텐트를 세우고 있다.

이번 대선 역시 핫이슈는 일자리 창출이다. 일자리는 우리 사회, 아니 전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큰 숙제중 하나다.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에겐 그만큼 간절하고 절박하기 때문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가 세계인의 우려 속에 대통령에 당선된 것도 그의 확고한 일자리 공약 때문일 것이다.

야권 유력 대권 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일자리 대통령’을 선언했다. 여권 유력주자인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을 비롯한 다른 대선주자들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일자리 퍼스트’, 정말 좋다. 나 역시 가장 현실적인 일자리 공약을 내놓은 후보를 선택할 생각이다. 하지만 기대감은 크지 않다. 일자리 공약이 나오자 마자 포퓰리즘 논란에 휘말리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문재인 표’ 일자리 공약이다. 그는 근로시간조정을 통해 50만개, 경찰관 소방관 등의 증원을 통해 공공일자리 81만개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비판의 핵심은 크게 두가지. 공공부문 일자리 확충에 따른 재정부담 문제, 성장없는 일자리 정책에 따른 실현 가능성 문제다. 여기에 기시감도 있고 구체적 실현 방안도 모호하다. 양질의 일자리가 필요한 상황에서 대기업을 옭죄는 정책을 함께 내놓으면 과연 기업들이 일자리를 더 만들겠느냐에 관한 물음도 있다. 정치권 한 인사는 “1등(문 전 대표)이 세게 (공약을) 내걸었으니, 2등과 3등은 더 세게 나올 수밖에 없다”면서 “국민은 결국 그들이 준 사이다의 상쾌함에 취해 병에 걸리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매번 선거 때마다 일자리 공약은 어김없이 등장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빈 공약, 헛 공약에 그쳤다. 굳이 통계를 들이댈 필요도 없다. 이미 많은 국민이 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18대 대선이 한창이던, 2012년으로 돌아가보자. 당시 대선주자 박근혜와 문재인은 ‘늘지오’ ‘만나바’라는 일자리 구호를 내걸었다. ‘(일자리를) 늘리고, 지키고, (일자리의 질을) 올리자’, 그리고 ‘(일자리를) 만들고, 나누고,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바꾸자’는 뜻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고용률 70% 달성을 정부 정책 우선순위로 삼았다. 하지만 상황은 나빠지면 나빠졌지 개선되지 않았다. 공식 실업률 통계에 잡히지 않는 ‘그림자 실업자’가 지난 4년간 31만명이 늘었다는 보도도 있다.

나는 대선 주자들의 일자리 공약이 포풀리즘인 지 일단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지금 당장은 그렇다. 아직 구체적인 공약을 내놓은 것이 아니라 “이렇게도 해볼 수 있다”라는 큰 방향만 설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국민과 전문가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촘촘한 일자리 공약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버리지 않고 있다.

대신 대선 주자들에게 제안을 하고 싶다. 일자리 공약을 내걸기 전에 안지키면 자진 하야하겠다고 선언하라. 그리고 대선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국민 하야 각서’를 쓰길 바란다.

노동계에서는 자주 ‘밥 일 꿈’이라는 용어를 상용한다. 먹고 일하고, 미래를 위한 (행복한) 꿈을 꾸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일이 첫단추라고 생각한다. 일을 해야 밥을 먹고 살수 있고(생산적 복지), 더 나은 삶, 보다 나은 행복을 추구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그 첫 단추에 대한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대통령이 이를 지키지 못한다면 당연히 물러나야 한다. 다시한번 촉구한다. 대선 출마자들은 합동으로 하야 각서를 써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