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th SRE]자동차 업종, 안전지대 벗어났나

by김도년 기자
2016.11.30 14:01:00

업황 악화 4위…첫 순위권

[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이번 업황 전망 설문결과만 보면 자동차 업종이 가장 우울하다. 업황이 나빠진 산업 순위로는 4위에 올랐고 앞으로 업황이 개선될 것 같지도 않다는 결과다.” (SRE 자문위원)

자동차 업종은 지난 2009년 4월 9회 SRE부터 업황 악화 업종을 묻는 설문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상위권(1~5위)에 들었다. 시장은 전반적으로 성장성과 수익성이 나빠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자동차 회사들이 마냥 허리띠를 풀고 배를 두드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경고 사인을 주고 있다.

24회 SRE에서 ‘최근 6개월내 업황이 나빠진 산업’을 묻는 설문에 전체 응답자 160명 중 32명(20.0%)이 자동차업종을 꼽았다.

‘앞으로 1년내 업황 개선을 기대하는 산업’을 묻는 설문에서는 단 8명(5.0%)의 선택만 받았다. 설문을 진행한 총 18개 업종 중 14위에 그쳤다. 1년 전 22회 SRE에서 자동차 산업은 업황 개선 기대 산업 1위에 올랐지만 불과 1년 새 크레딧 시장의 시각이 달라졌음을 읽을 수 있다.

물론 시장이 자동차 업종을 현재 구조조정 과정을 겪고 있는 조선, 해운업종 만큼 신용위험이 커졌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대표 자동차 기업인 현대자동차의 회사채 신용등급은 ‘AAA’급으로 국가 신용등급과 같은 수준이다.

하지만 이렇게 신용등급이 국내 최고 수준에 있는 것이 오히려 상대적인 우려감을 높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조선, 해운업은 바닥을 치고 개선될 일만 남았을 수도 있지만 자동차 산업은 더 개선될 여지도 없을 만큼 정상에 와 있다는 것이다.

SRE 자문위원은 “현대차가 더 이상 올라 갈 곳이 없는 최고 등급이다 보니 상대적인 우려감이 더 많이 생긴 것 같다”며 “지난해 하반기 이후 중국 시장에서 부진했고 국내 내수시장에서도 특별소비세가 인하되는 변수로 버티다가 이젠 국내 수요도 감소 국면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현대자동차를 언급하며 우려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현대차와 경쟁하는 글로벌 자동차회사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구조조정을 해 왔고 비용 구조를 개선해 최근 글로벌 자동차 시장 성장의 수혜를 누렸지만 현대차는 이미 낮은 수준의 비용 구조를 더 개선하거나 브랜드 이미지를 큰 폭으로 높이는 것, 신차 모델 전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설명이다.

S&P가 현대차와 기아차의 계열사를 포함하고 현대캐피탈과같은 금융자회사 실적을 빼고 계산한 영업이익률은 지난 2012년 9.6%에서 지속해서 줄어 지난해 말 6.8%까지 하락했다.

물론 현대차의 실적 안정성이나 현금창출력, 재무상황이 우수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올해 상반기 개별 재무제표 기준 부채비율은 30.4%에 불과하고 유동비율도 221.9%로 유동성도 매우 우수하다. 전체 자산에서 차입금을 나눈 차입금 의존도도 한자리 수인 4.2%에 불과하다. 이런 우량한 재무지표가 국가 신용등급과 같은 ‘AAA’급 신용도를 떠받치고 있지만 앞으로도 우수한 수익성과 성장성이 계속 될 수 있을지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현대기아차는 세계 자동차시장에서의 판매 성장률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고 경쟁 심화와 신흥국 경기 침체 등으로 수익성 저하 추세가 계속되고 있다. 전체 판매량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시장에서의 부진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점도 우수한 실적 기조를 유지하는 데 다소 부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재 해외 완성차공장에서는 투자가 진행되고 있고 글로벌 비즈니스센터 신축 등 대규모 투자도 계획돼 있다. 미국과 인도 등에서 새로운 설비 투자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생산량 30만대를 기준으로 새 공장 신축에 1조원 이상의 자금이 들어가는 점을 고려하면 생산규모에 따라 앞으로 수조원대 투자 부담이 예상된다. 글로벌 비즈니스센터 신축에만 현대차 1조4146억원, 현대모비스 6430억원, 기아차 5144억원 등 총 2조5721억원의 투자금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기아차는 멕시코, 중국 등 해외 생산설비 투자로 차입금이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해외공장 신규 투자는 초기에 생산비용이 들어가므로 수익성에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 다만 현대기아차의 현금유동성이 우수하기 때문에 대규모 신규 투자를 감당할 능력은 충분하다. 이지웅 한기평 연구원은 “해외 생산거점을 중심으로 설비투자가 지속되겠지만 현대기아차의 영업현금창출력을 고려하면 현금흐름 안에서 충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근 배출가스 문제 등 환경 규제가 전 세계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관련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 것도 신용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이다. 한 SRE 자문위원은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은 배출가스 문제로 대규모 리콜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데 현대차는 그냥 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자동차부품사들의 현대기아차 의존도를 살펴보면 낮게는 50%, 높게는 90%에 이른다. 현대기아차의 실적이 그 동안 크게 나빠지진 않았기 때문에 이들 기업도 안정적인 실적 기조를 보이고 있다. 다만 현대기아차의 성장이 둔화하고 수익성이 저하하면 자동차부품사들에게도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 현대기아차의 해외 증설과 꾸준한 신차 발표에 따른 낙수효과가 부품업계 전반에 걸쳐 나타나지만 개별 업체별로는 생산 제품의 중요도와 부가가치에 따른 교섭력 차이와 거래처 다변화 정도 등에 따라서 실적 차이를 보일 전망이다.

여기에 지난 11월9일 미국의 새 대통령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자동차 업계에 부정적인 기운이 감돌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면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은 물론 미국, 독일 등 세계 자동차 산업 전체에도 부정적인 요인이 될 것이라는 조심스런 전망도 나온다.

한 신평사 연구원은 “미국도 자동차 생산시설을 멕시코로 상당수 이전한 상태이기 때문에 보호무역주의 강화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악재가 될 수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불확실성 증가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현상으로 원달러 환율이 오르고 엔화가 강세를 보이면 국내 자동차업계 입장에선 나쁘게만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24회 SRE(Survey of credit Rating by Edaily)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문의: stock@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