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병원 '무기한 휴진' 강행…불안 휩싸인 환자들(종합)
by이유림 기자
2024.06.27 16:15:44
연세의료원 산하 병원 3곳 교수들 '무기한 휴진'
의료현장 극심한 혼란은 없었지만 환자들 불안
"항암치료 마지막인데" "심장약 못 받을까 걱정"
휴진 확산 기로…환자단체는 대규모 투쟁 예고
[이데일리 이유림 기자 박동현 정윤지 수습기자] 연세의료원 산하 세브란스병원 소속 교수들이 27일 예고대로 ‘무기한 휴진’을 강행했다. 일괄 휴진이 아닌 개별 교수 자율 휴진인 데다 응급실 등 필수 분야는 유지돼 의료 현장에서 심각한 혼란은 발생하지 않았으나 계속해서 진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여기에 내달 4일부터 서울아산병원 교수들도 휴진하겠다고 밝히는 등 다른 ‘빅5’ 병원으로 번질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환자들의 걱정은 더 커질 전망이다.
| 세브란스병원 교수들이 무기한 휴진에 돌입한 27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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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전 8시 ‘빅5’ 중 하나인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이곳에서 만난 60대 이모 씨는 연세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무기한 휴진을 강행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 밤잠을 설쳤다고 했다. 지난 3년간 2주마다 항암 치료를 받아온 이씨는 “예정대로면 이달 치료를 마치고 추적 검사에 들어가야 한다”며 “다행히 오늘은 진료를 한대서 왔는데 마지막 한 번 남은 항암 치료가 밀릴까 봐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의료계에 따르면 연세의료원 산하인 신촌 세브란스병원과 강남·용인 세브란스병원의 교수들은 이날부터 일반 환자의 외래진료와 비응급 수술 및 시술 등을 무기한 중단했다. 응급실과 중환자실, 분만실 등 필수적인 분야의 업무만 유지됐다. 이들은 정부가 현 의료대란과 의대 교육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가시적 조치를 취할 때까지 휴진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휴진하는 교수 대부분은 개인 사유나 병가, 학회 참석 등을 사유로 연차를 쓴 탓에 정확한 휴진 규모를 집계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안석균 연세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원장은 “교수 개인 의사에 따른 휴진이기에 별도로 휴진율을 집계하지 않았다”면서도 “전해 들은 대략적인 휴진율은 30~40%였다”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 노조는 외래 진료가 평소보다 10% 줄어든 것으로 파악했다.
실제로 신촌 세브란스병원 본관의 외래창구 앞은 신규환자를 받지 않아 비교적 한산했고 병원 내부 곳곳도 평소보다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익명을 요구한 신촌 세브란스 병원의 간호사는 “휴진하는 사람(교수)도 있고 안 하는 사람도 있다”며 “어쨌든 오늘부터 휴진이긴 하다”고 전했다.
간 센터에 방문한 김석우(37)씨는 “원래 이 시간에 오면 주차할 곳이 없어서 뱅글뱅글 돌아야 하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텅 비어 있더라”며 “전반적으로 병원 내부도 그렇고 조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혈액내과에서 진료가 예정된 암환자 김복순(65)씨는 “외래 신규를 안 받으니까 환자가 적어서 오히려 (기존 환자들의) 진료는 빨리 진행되는 느낌”이라며 “암 환자들은 그래도 진료를 받아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강남구 강남 세브란스병원을 찾은 환자들도 자신의 수술·진료가 언제 취소·연기될지 몰라 불안에 떨었다. 심장약을 타러 온 임모(81)씨는 “심장약 복용을 중단하면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파업 때문에 다음 약을 타지 못하면 나는 죽을지도 모른다”며 “그렇게 되면 병원에서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지난 12일 아들이 뇌출혈로 응급 입원한 뒤 이날까지 수술을 받지 못했다는 사연도 있었다. 전모(72)씨는 “지난주에는 수술실이 없다는 이유로 이번주에 수술하자더니, 다시 다음주에 수술을 예약하겠다고 한다”고 울상을 지었다. 전씨는 “원래 담당 교수님이 회진 때마다 오셨는데 오늘은 안 오셨다“며 ”안에서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지는지 모르니까 불안하고 하필 이 시점에 아들이 입원해서 천운이 없구나 싶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환자들은 향후 휴진 움직임이 확산하는 게 아닌지 마음을 졸였다. 세브란스병원 휴진이 장기화하면 다른 병원으로 전원 조치할 수 있지만 다른 병원들마저 휴진에 동참할 경우 피해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아산병원이 내달 4일부터 무기한 휴진에 돌입하고 범의료계 협의체인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가 오는 29일 휴진 등 투쟁 방식을 논의하는 등 불확실한 상황도 이어지고 있다.
이에 맞서 환자들도 대규모 투쟁을 예고하고 나섰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환단연)는 내달 4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의사 집단 휴진 철회 및 재발 방지법 제정 촉구 환자 총궐기대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주최 측의 예상 참여 인원은 1000명이다. 환단연은 “환자의 불안과 피해를 도구로 정부를 압박하는 의료계의 투쟁방식에 환자단체들은 더는 인내하지 않을 것”이라며 무기한 휴진 등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비판했다.
나아가 이들은 이번 집회에서, 의료인이 집단행동을 하더라도 응급실과 중환자실 등 필수의료 영역은 정상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신속히 만들어 달라고 국회에 강력히 요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