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박종오 기자
2016.07.27 14:42:37
[세종=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정치권의 세금 깎아주기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인구 고령화 등에 따른 복지 지출 증가로 세수 확보 필요성이 커졌지만, 정작 입법부는 선심성 법안만 쏟아내고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개원한 20대 국회에서 이달 26일까지 발의된 법안 총 1135건 중 기획재정위원회에 접수된 세법 개정안은 64건(5.6%)이다. 이 중 절반에 가까운 29건이 세금을 물리지 않거나 감면·공제하는 내용을 다루는 조세특례제한법(이하 조특법) 관련 법안이다.
조특법중 26건(89.7%)은 기존 세금 감면 혜택을 확대하거나 수혜 기간을 연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기존 혜택을 축소하는 것은 대기업 법인세 세액공제 감축 등 3건에 불과했다.
예컨대 올해 혜택이 종료되는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는 일몰 기한을 연장하는 법 개정안이 벌써 3건이나 발의됐다. 이 제도는 자영업자 과표 양성화라는 도입 취지를 달성해 혜택을 축소하자는 것이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결론이다. 일몰을 5년 연장하면 세수가 무려 11조 1728억원 감소할 만큼 재정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그러나 정부 개선안이 나오기도 전에 입법부가 선수를 친 것이다.
20대 국회의 감세 경쟁은 19대 국회와 판박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이달 발간한 ‘제19대 국회 세법개정안 주요내용과 쟁점’ 보고서에 따르면 19대 국회(2012년 5월 30일~올해 5월 29일)에서 발의된 세법 개정안 942건(지방세 관련 법률안 제외) 중 362건(38%)이 비과세·감면 제도를 포함한 조특법이었다. 3건 중 1건꼴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일부 정부 발의안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비과세·감면 혜택을 확대하거나 일몰 기한을 연장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득세법(123건), 관세법(74건), 국세기본법(58건), 부가가치세법(56건), 법인세법(51건), 상속·증여세법(44건) 등은 발의안 수가 조특법에 크게 못 미쳤다.
조특법 개정안 대부분은 의원들이 쏟아냈다. 총 362건 중 의원 안이 353건으로 97.5%에 육박했다.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자기 지역구 등 특정 이익 집단의 비과세·감면을 확대해 달라는 요구를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세금 감면 경쟁에는 여야가 따로 없었다. 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주요 3대 세목(소득세·법인세·부가세) 법 개정안은 195건이었다. 그러나 두 당 모두 조특법 개정안은 각각 175건씩을 발의했다. 주로 세금 특례 조항을 담은 법 개정에 열을 올렸다는 뜻이다. 조특법은 98건이 개정 세법에 최종 반영됐고, 264건은 철회 또는 폐기됐다. 세법 반영률은 27.1%로 전체 세금 관련법 개정안의 반영 비율(32.1%)보다 낮았다. 실제 제도에 반영된 사례는 상대적으로 드물었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남발되는 특례 법안이 조세 형평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이 앞에서는 복지 확대를 외치면서 뒤로는 재원인 세수 확보 기반을 헌다는 비판도 나온다. 예산정책처 자료를 보면 18대 국회(2008년 5월 30일~2012년 5월 29일)에서도 전체 발의된 세법 개정안 959건 중 566건이 세수 감소 법안이었다. 세수 증가 법안은 41건에 불과했다. 법 개정의 열쇠를 쥔 국회가 증세보다 감세에 관심을 쏟는 추세가 굳어지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조세 부담률은 2014년 기준 1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26.1%에 크게 못 미친다. 조세 부담률은 경상 국내총생산(GDP)에서 국민이 내는 세금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덜 내고 덜 받는’ 지금의 복지정책 구조를 ‘더 내고 더 받는’ 구조로 전환하려면 이 비율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정부가 추정하는 올해 조세 부담률은 18.9%로 여전히 금융위기 이전 수준조차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조세 부담률에 공적연금·건강보험 등 사회보장 부담률을 합한 국민 부담률도 2014년 24.6%로 OECD 평균(34.4%)을 밑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특정 집단에 혜택을 주는 조세특례를 남발하면 세금의 공평성을 훼손하고 조세 정책도 왜곡될 수 있다”며 “정부 입법안이 법제처 심사를 거치는 것처럼 의원 입법도 예산정책처 검토를 의무화하는 등 제도를 바꿔 선심성 법안 발의를 억제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