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위기의 대우조선, 우선 버려야 활로 보인다

by이재호 기자
2015.08.11 18:40:35

[이데일리 이재호 기자] 2분기에만 3조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총체적 난국에 빠진 대우조선해양(042660)이 지난 10일 위기 극복을 위한 자구책을 발표했다. 서울 다동 사옥과 5~6개의 자회사를 매각하는 등 조선업과 무관한 자산 정리를 포함해 임원을 30% 줄이고 인력도 재배치해 조직 슬림화를 도모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활로 찾기에 부심하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의 행보를 지켜보며 ‘봉위수기(逢危須棄)’라는 바둑 격언이 떠올랐다. 중국 당나라 현종 때 바둑 최고수였던 왕적신이 10가지 바둑의 비결을 정리한 ‘위기십결(圍棋十訣)’ 중 하나로, 위험을 만나면 모름지기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만사가 뜻대로만 풀리면 좋겠지만, 위기는 언제나 찾아올 수 있다. 이럴 때는 버려야 할 것들을 신속하게 포기해 손실을 최소화하고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상책이다.

이같은 측면에서 대우조선해양의 결단은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비리 행위를 저지른 임직원의 경우 퇴사와 더불어 손해배상도 청구하겠다며 투철한 주인의식을 주문했다. 갑판까지 물이 들어찬 배처럼 풍전등화의 운명에 처한 대우조선해양을 살리는 데 노사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인력 구조조정 가능성을 허투루 듣고 넘길 수 없는 이유다.



지난해 방영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미생(未生)’에도 봉위수기의 사례가 등장한다. 앞날이 창창한 후배를 구하기 위해 마주 대하기가 죽기보다 싫은 상사에게 부탁을 해야 할 처지에 놓인 오상식 과장은 장그래가 건넨 한 마디에 용기를 낸다. “부끄럽지만 일단은, 내일은 살아남아야 합니다.”

정 사장은 자구책을 발표하며 “남이 시켜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반성하며 자구노력을 해야 한다”며 “이런 조치를 해야 하는 것이 원망스럽지만 후배들에게 자랑스러운 회사를 만들어 주기 위한 일”이라고 토로했다.

정 사장은 물론 대우조선해양 임직원 전체가 봉위수기의 마음가짐을 유지하며 현재의 위기를 극복해 내기를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