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저금리 시대'…미성년 자녀·노후 걱정 덜 새 신탁시장 열린다(종합)
by문승관 기자
2017.01.12 12:00:00
금융위 ''2017년 업무 보고''
"금융업 미래 새 먹거리로 키운다"
올 10월 신탁업법 제정안 국회 제출
보험금청구신탁 이용하면 새로운 후견인 역할 가능
생명보험, 신탁자산에 편입시켜 고령화 문제 해결
단순 금융상품 아닌 종합자산관리 수단으로 역할 강화
[이데일리 문승관 기자] 김씨와 같이 그동안 신탁을 통해 생명보험금을 활용하는 상속 계획이 여러 가지 이유로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이르면 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종합자산관리서비스의 마지막 남은 영역이었던 신탁 시장이 활성화한다.
정부는 고령화·저성장 시대에 ‘신탁’을 종합자산관리서비스의 한 축으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관련법이 없어 가로막혀 있었던 보험금 신탁과 재간접 신탁(신탁 오브 신탁)을 허용하는 등 신탁업 발전을 위한 새로운 토대를 마련하기로 했다.
금융위원회는 12일 올해 업무보고 상세브리핑에서 올 10월까지 신탁업 제도 전면 개편안을 담은 ‘신탁업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고 밝혔다.
신탁은 주식, 채권, 예금, 펀드, 보험 등을 모두 담을 수 있는 주머니이다. 그동안 활성화하지 못한 이유는 다양한 상품이 없었던 데다 워낙 펀드 시장이 커지면서 신탁에 각종 펀드를 담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신탁업은 1989년 전체 은행에 대해 겸영이 허용됐고 2005년에는 증권사와 보험사에 대해서도 겸영이 허가됐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 기준으로 20개 은행, 20개 증권사, 6개 생명보험사가 신탁업을 영위하고 있다.
신탁업이 쪼그라든 이유는 관련법 영향이 크다. 지난 2009년에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신탁업은 금융투자업무 중 하나로 전락했고 신탁업법은 아예 폐지됐다. 2012년에는 신탁제도에 관한 법률인 신탁법이 개정됐으나 자본시장법에서 규정한 금융투자업무 중 하나인 신탁업에 반영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신탁법에 포함된 수익증권발행신탁, 재신탁 등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수익증권발행신탁이란 수탁자가 수익증권을 발행할 수 있는 신탁으로 기업이 자산을 신탁하고 수탁자가 신탁재산을 통해 발생하는 장래의 수익권을 유가증권 형태로 발행·판매할 수 있는 제도다.
현행 법 체계에서는 보험금청구권신탁 같은 신탁상품도 개발할 수 없다. 금융위는 이러한 불합리함을 개선하고 신탁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진입 규제를 재정비할 계획이다.
김용범 금융위 사무처장은 “오는 6월까지 실무 테스크포스(TF)를 운영해 신탁업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10월쯤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신탁업 제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재간접 신탁의 제한적 허용과 보험금청구권 신탁의 허용이다. 재간접신탁은 신탁 속에 신탁을 넣는 것이다. 지난 2012년 신탁법 개정으로 종합자산신탁으로 증권사에 재간접 신탁을 허용했지만 정작 자본시장법이 개정되지 않아 상품을 출시할 수 없었다. 재간접 신탁이 허용되면 종합자산신탁으로 부동산신탁을 운용할 수 있다. 빌딩 등을 보유한 자산가들은 이러한 신탁상품을 통해 상속세 공제에도 활용할 수 있다.
현재 특정금전신탁 규모는 총 263조원(퇴직연금 제외)에 달하나 단순 운용형인 특정금전신탁(MMT), 정기예금형이 거의 절반(44%)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종합재산신탁의 계약건수가 20건에 불과한 등 장기 자산관리형(유언, 상속·증여), 복지형(장애인신탁) 활용이 매우 저조하다.
금융위는 현 신탁업 규제체계하에서 고령화 등 사회·경제변화에 따른 새로운 신탁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곤란하다고 판단하고 규제를 대폭 푼다는 계획이다.
그 가운데 보험금청구권신탁은 주목할 만하다. 보험금청구권을 신탁해 보험계약자 사망 시 보험수익자로 지정해 놓은 사람이 보험금을 안전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지난 2009년 사망한 팝가수 마이클 잭슨 역시 ‘패밀리 트러스트’를 통해 사후 재산을 분배했다. 특히 미성년인 자녀에게는 나이에 따라 재산을 지급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생명보험 가입자가 보험금을 신탁하기로 약정해 놓으면 사후 자녀가 미성년자일 때 생활비를 받다가 성년이 된 이후 특정 시점에 남은 목돈을 상속할 수 있다.
김진영 신한은행 신탁연금본부장은 “국내에선 자본시장법과 신탁법에서 보험금청구권을 신탁자산으로 하는 신탁이나 보험증권에 대한 금전운용을 허용하고 있지 않아 신탁을 통한 보험금 관리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법 개정 이후에는 이러한 부분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신탁업법 개정안에서 뜨거운 감자였던 불특정금전신탁의 허용 문제는 일단 제외됐다. 불특정금전신탁은 금융사가 여러 고객으로부터 돈을 모아 운용한 뒤 수익을 되돌려주는 실적배당상품으로 펀드와 유사한 형태다. 자본시장법에 통합된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이 2004년 시행되면서 폐지됐다.
은행들은 불특정금전신탁을 허용해달라고 했지만 증권가는 강하게 반발한다. 업권 간 이해 상충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결국 제외했다.
특정금전신탁은 원금보장 계약을 하지 못하지만 불특정금전신탁은 원금을 보장한다. 문제는 불특정금전신탁을 통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에 투자하면 부동산 시장 경색 시 그 손실을 은행이 모두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신탁제도 개선 TF는 금융권 공동의 종합적인 자산관리 서비스로서 신탁업이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개선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특정 업권의 이해나 수익 증대를 위한 방향으로 논의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