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설탕 이어 다음은 가공식품?…정부 으름장에 식품업계 '덜덜'

by남궁민관 기자
2024.03.19 16:06:53

정부 간담회 일주일도 안돼 밀가루 가격 '자진인하'
공정위 '담합 의혹' 제당업계 조사나서며 설탕 정조준
최상목 언급한 '식용유' 이어 가공식품으로 칼날 향할 듯
"원재료 다양한 가공식품 인하 어려워"·"오른건 과일" 불만도

[이데일리 남궁민관 한전진 기자] 정부가 지난 13일 국내 주요 식품업체 19곳을 불러 “물가 안정 기조에 적극 협조하라”며 사실상 가격 인하를 압박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주요 제분업체들이 소비자용 밀가루 가격을 낮추며 ‘백기투항’했다. 공교롭게도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날 국내 주요 제당업체들을 상대로 현장 조사를 벌이면서 밀가루에 이어 설탕 가격 인하도 압박하고 나선 모양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가공식품 업체들의 긴장감이 높아진다. 지난해 라면 가격 인하를 위해 밀가루 가격을 먼저 잡았던 전례가 있던 만큼 조만간 정부의 칼날이 자신들을 향할 것이란 우려에서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 야채 매장에서 파 등 야채 물가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CJ제일제당(097950)은 다음 달 1일부터 중력밀가루 1㎏·2.5㎏ 제품과 부침용 밀가루 3㎏ 등 일반 소비자용 밀가루 제품 3종 가격(대형마트 정상가격 기준)을 평균 6.6% 인하키로 했다고 19일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최근 국제 원맥 시세를 반영하고 정부의 물가안정 기조에 적극 동참하는 차원에서 가격을 내리기로 했다”며 “장바구니 물가 안정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기 바란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대한제분(001130)과 삼양사(145990) 등 국내 다른 주요 제분업체들도 소비자용 밀가루 가격 인하를 적극 검토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인하 시점과 폭을 적극 검토 중”이라며 “머지않은 시점에 가격인하 조치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22년께 천정부지 치솟았던 국제 밀 가격이 지난해부터 점진적으로 안정화를 이룬 가운데 최근 정부의 수위 높은 압박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에 따르면 밀가루 원재료인 소맥분(1㎏ 기준) 수입가격은 2022년 4분기 630.6원에서 지난해 4분기 435.1원으로 안정화됐다. 한훈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은 지난 13일 식품업체들을 만나 “국제 원재료 가격 변화를 탄력적으로 가격에 반영해 달라”고 압박했고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이날 전격 인하를 끌어낸 셈이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밀가루.(사진=연합뉴스)
이날 공정위는 CJ제일제당과 삼양사, 대한제당(001790) 등 국내 주요 제당업체 3곳과 대한제당협회를 상대로 설탕 가격 담합 여부를 파악하기 위한 현장조사에 나서면서 압박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지난 18일 농협하나로마트 양재점을 직접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과도한 가격 인상, 담합 같은 시장 교란 행위와 불공정 행위로 폭리를 취하면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한 직후 강도 높은 압박이 전개된 셈이다.

업계에서는 식용유 가격도 정부의 관리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6일 ‘물가관계장관 회의’에서 “최근 국제곡물가격이 2022년 고점 대비 절반가량 하락했지만 밀가루·식용류 등 식품가격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고물가를 유발한다는 지적이 있다”며 밀가루와 함께 식용유를 직접적으로 언급해서다.

특히 밀가루와 설탕, 식용유를 활용해 가공식품을 생산·판매하는 식품업체들이 다음 압박 수순이 될 것이란 게 업계 중론이다. 정부는 지난해 라면 가격 인하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제분업체들을 압박해 밀가루 가격을 우선 내린 전례가 있어서다.

식품업계 A사 관계자는 “원가 비중이 상당히 높은 밀가루나 설탕은 원재료 가격이 떨어지면 낮출 여지가 커지지만 다양한 원재료를 사용하는 가공식품에 이같은 논리는 맞지 않다”고 토로했다. B사 관계자는 “최근 소비자들의 부담이 가장 큰 건 과일 등 신선식품인데 가공식품이 되레 압박을 받는 모양새”라고 꼬집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