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금리 대출 시장 과열...서민금융 영역 침범 우려도
by이성기 기자
2015.08.31 17:22:01
[이데일리 이성기 기자] 지난달 초 갑작스레 목돈이 필요하게 된 직장인 김모(34)씨는 우리은행 ‘위비 뱅크’의 문을 두드렸다. 기존 신용대출이 있는 데다 시중은행에서 추가 대출을 받으려면 서류심사 등 절차가 번거로웠기 때문이다. 김씨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해 간단한 신상정보만 입력한 뒤 필요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신청과 심사, 계좌 입금까지 걸린 시간은 채 10분도 되지 않았다.
지난 5월 시중은행 가운데 우리은행이 처음으로 개인 모바일 대출인 ‘위비(WiBee) 뱅크’ 상품을 내놓은 뒤 중금리 대출 시장을 겨냥한 은행권의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기존에는 주로 7등급 이하의 고객이 대상이었지만 대구은행이 8등급인 직장인까지 신용대출 대상을 확대하면서 경쟁이 가열되는 양상이다. ‘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상품 개발에 적극 나서 달라’는 금융당국의 요청에 부합하는 모양새지만, 일각에선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의 영역을 침범해 서민금융시장 질서를 어지럽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31일 은행권에 따르면 중금리 신용대출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우리은행의 ‘위비’모바일 대출실적은 지난 28일 현재 6900건 27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건당 390만원의 대출이 나간 셈이다. 이 상품의 1인당 대출한도는 1000만원으로 신용등급이 1~7등급에 속해야 자격이 있다. 우리은행은 컨설팅·IT기업들과의 제휴를 통해 모바일 대출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지난 6월 5~7등급 직장인을 겨냥해 ‘스피드업 직장인 모바일 대출’을 출시한 신한은행은 최근 대상을 늘려 규모를 확대했다. 신용대출이 없는 고객만 이용 가능하다는 제한을 없앴고, 신한은행 고객이 아닌 직장인도 연 5.39~7.69%의 중금리로 대출이 가능해졌다.
하나은행의 ‘하나 이지세이브론’도 3개월 이상 급여 또는 사업 소득만 있으면 자격이 부여되며 대출 금리는 신용등급에 따라 연 6~10%면 가능하다. 모바일이나 인터넷으로 신청하면 연 0.2%의 우대 금리 혜택도 받을 수 있다.
KB국민은행의 경우 자체 중금리 상품은 없지만 지주내 계열 저축은행을 서민 고객층과 연계하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KB금융은 KB저축은행을 통해 ‘KB착한대출’을 선보였는데 대출금리는 최저 연 6.5~최고 19.9%, 대출기간은 최장 60개월까지, 대출한도는 3000만원까지다. 평균 금리가 연 14.7%임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말까지 총 8584건, 632억원의 실적을 기록했다. KB금융 관계자는 “기존 대부업과 제2금융권의 고금리 신용대출 상품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의 가계금융비용 부담을 한결 덜어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금리 대출 시장이 뜨겁자 지방은행도 뛰어들었다. DGB대구은행은 영업점 방문 없이 인터넷을 통해 우대금리로 신용대출이 가능한 ‘직장인 e-Start론’을 출시해 1일부터 판매에 들어간다. 3개월 이상 재직 중인 직장인이 대상인데, 신용등급을 8등급까지 확대했다. 최고 10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대구은행 관계자는 “재직기간이 짧은 사회 초년생, 주로 제2금융권의 대출을 이용 중인 고객도 5~9%대로 이자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출시된 중금리 신용대출 상품이다”고 설명했다.
시중은행들이 우후죽순으로 중금리 대출 상품을 내놓으면서 신협이나 새마을금고 등 전통적인 서민금융 영역이 침범을 받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이 서민금융기관에 대해선 손쉬운 주택담보대출에만 의존하지 말고 저신용자를 위한 서민금융 대출을 늘려야 한다고 하면서 은행에겐 오히려 중금리대출을 독려하고 있다”며 “정책이 엇박자를 내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