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보존→철거..세운상가 결국 사라진다

by신수정 기자
2022.04.21 16:24:40

오세훈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 발표
세운·청계·삼풍상가 도심 '녹지축'으로 재개발
사업자에 용적률 인센티브 제공하고 녹지 기부채납
"사업기간 10년은 걸릴 것"..좌초 우려도

[이데일리 신수정 기자] 철거와 존치를 오가던 세운상가가 결국 사라지게 됐다. 종묘에서부터 퇴계로까지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세운상가, 청계상가, 삼풍상가가 서울 도심의 핵심 녹지공간으로 통합 재개발될 계획이다.

낙후된 세운상가 일대 모습. (사진=신수정 기자)
오세훈 시장은 고밀·복합 개발과 녹지공간 확보를 동시에 추진하는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을 21일 발표했다.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의 핵심은 건축물 높이(90m 이하)와 용적률(600% 이하) 등 기존 건축규제를 과감하게 완화하고, 그 대가로 얻는 공공기여를 공원과 녹지로 조성해 도심 전체를 녹지로 연결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3.7%에 불과한 서울 도심 녹지율을 15% 이상으로 4배 이상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신규 정비구역의 대표적인 지역으로는 44만㎡에 달하는 세운지구가 꼽힌다. 세운지구는 2006년 오세훈 시장의 취임 개발공약 1호 지역이었다. 2009년 세운상가를 철거하고 주변 8개 구역 통합개발을 골자로 한 재정비촉진계획을 수립했지만, 고(故) 박원순 전 시장 재임 당시인 2014년 도시 재생을 중심으로 재정비 촉진 계획이 변경됐다. 세운지구 통개발 계획이 폐기되면서 171개 구역으로 쪼개졌는데, 이 중 사업이 추진되지 않고 있는 147개 지역은 일몰제 적용으로 정비구역 해제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세운지구는 30년 이상 된 노후 건축물 비율이 94%에 달하고 화재에 취약한 목조 건축물이 절반 이상이다. 세운 지구를 둘러본 오 시장은 “화재와 건물붕괴 위험에 노출된 것은 물론이고 불이 나면 소방차도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라며 “하루빨리 재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1일 세운상가 지하1층 세운홀에서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을 발표했다. (사진=신수정 기자)
세운상가, 청계상가, 삼풍상가는 중장기적으로 핵심 녹지축으로 바뀔 예정이다.

우선 상가 확보를 위해 시는 용적룔 인센티브를 준다는 조건으로 개발사업자가 상가 매입 후 기부채납을 하도록 할 방침이다. 또 상가 소유주가 지분참여방식으로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길도 열어준다. 민간에서 매입이 안될 경우 공공이 상가를 매입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오 시장은 “세운상가, 대림상가, 삼풍상가를 매입하는 것을 조건으로 용적률 인센티브를 줌으로써 통합 재개발 녹지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며 “이 방식으로 개발할 경우 세금은 거의 들지 않으면서 서울시민에게 녹지공간을 되돌려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임 시장 시절 1000억원을 들여 만든 공중보행로도 철거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오 시장은 “공중보행로가 이제 겨우 완성돼 활용이 임박했지만, 철거돼야 할 운명”이라며 “계획을 실현하려면 공중보행로가 대못이 될 수 밖에 없고, 대못은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바로 허물지 않고 10년 정도는 쓸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며 “상가를 통째로 매입 완료하고, 영업 중인 임차인 소유자가 퇴거를 해야 허물 수 있어 아마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개발 소식이 전해지자 상가 주민들의 반응은 기대와 우려 등이 교차했다. 차량접근이 불가능하고 낙후된 곳을 개발하는 것은 맞지만, 여러 차례 번복된 개발계획이 또 다시 좌초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세운상가에서 업체를 운영 중인 A씨는 “지금도 비만 오면 공중보행로에서 물이 떨어져 여자화장실이 물로 가득 차는 바람에 애를 먹고 있다”며 “이미 개발됐어야 할 곳인데, 땜질식 처방에 애만 먹고 세금만 축내고 있다 하루빨리 재개발돼야 한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또 다른 주민 B씨는 “시장이 바뀔 때마다 세운상가 계획이 바뀌는데, 10년 뒤에 일을 어떻게 알겠냐”며 “괜히 상가 주민들만 내쫓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