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티시 드림’ 꿈꾸며 ‘영불해협 횡단’ 난민 27명 익사(종합)
by방성훈 기자
2021.11.25 16:36:15
고무보트 타고 영불해협 횡단 시도하던 난민 조난
소녀 포함 여성 5명 등 31명 사망…2014년 이후 최다
존슨-마크롱 “불법 밀입국 근절 협력 강화” 강조했지만
英 Vs 佛, 수년간 난민문제로 갈등…묘한 신경전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프랑스에서 작은 배를 타고 영불해협(도버-칼레 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가려던 난민 27명이 익사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난민 밀입국 시도를 막기 위해 협력하겠다면서도,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모습을 보여 난민문제를 둘러싼 양국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24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AFP통신 등에 따르면 프랑스를 떠나 영국으로 향하던 난민 보트가 프랑스 칼레 항구 앞바다에서 침몰됐다. 난민들은 소형 고무보트를 타고 해협 횡단을 시도했다. 보트가 침몰한 뒤 바다 위에 떠 있던 난민들을 프랑스 어선이 발견하며 재난 신고가 이뤄졌다.
제라르 다르마냉 프랑스 내무장관은 이날 관련 소식을 전하면서 “배를 타고 영불해협을 건너려던 난민 31명이 익사했다. 사망자 중엔 어린 소녀 1명, 여성 5명이 포함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프랑스 내무부는 사망자 수를 정정해 27명으로 낮췄다.
다르마냉 장관은 또 “난민들이 타고 있던 보트는 매우 약했다.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고무보트의 공기가 다 빠져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날만 671명의 무단 횡단을 적발했다면서 “난민들의 이민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밀입국 알선업자 4명을 체포했다”고 덧붙였다.
이번에 익사한 난민 수는 국제이주기구(IOM)가 영불해협의 난민 사고와 관련된 데이터를 수집하기 시작한 2014년 이후 단일 사건으로는 최다 인명 피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조난자들을 발견한 이후 영국은 헬리콥터 1대를, 프랑스는 헬리콥터 1대와 선박 3척을 각각 동원해 수색 및 구조 작업을 벌였으며, 양국 재난당국은 이후에도 항공과 해상에서 긴급수색 및 구조작업을 지속했다.
양국 정상은 지속되는 난민들의 영불해협 횡단 시도에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불법 밀입국 알선업자들을 근절시키기 위해 힘을 합치겠면서도, 이번 사태 책임을 상대 국가에 떠넘기는 듯한 모습을 보여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이번 재앙은 영불해협을 이런 식으로 건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잘 보여준다. 또한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보내려는 범죄자들을 차단하는 노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존슨 총리는 “일부 파트너들, 특히 프랑스에 우리가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일을 하도록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이번 사태의 책임을 프랑스로 돌리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밀입국 알선업자들의 살인을 막기 위해 영국은 더 많은 일을 하고자 프랑스 정부와 협력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게 우리가 제안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는 (영불)해협이 묘지가 되도록 놔두지 않겠다”며 사망자들에 대해 애도의 뜻을 표했다. 또 영국과의 협력을 촉구하는 한편 “이번 비극에 대해 책임자들을 찾아 책임을 물을 것이다. 영국, 벨기에, 독일, 네덜란드의 도움을 받아 범죄 조직을 해체하기 위한 노력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 보리스 존슨(왼쪽) 영국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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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정상들은 책임 공방보다 미래 협력 쪽에 무게를 두는 발언을 내놨지만, 양국 관료들 사이에선 신경전이 오갔다. 프랑스 칼레의 나타샤 부샤르 시장은 “나는 존슨 총리가 지난 1년 반 동안 냉소적으로 프랑스를 비난하기로 선택했다고 믿고 있다”며 “영국 정부에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양국이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건너가려는 난민 문제를 둘러싸고 수년 간 격렬한 논쟁을 벌여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 중동에서 유럽으로 넘어온 난민들은 오랜 기간 ‘브리티시 드림’을 꿈꾸며 프랑스 북서부 해안가에서 소형 구명보트를 타고 영불해협을 횡단해 왔다. 지난주에도 영불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가려던 난민 243명이 구출되는 사건이 있었다.
특히 올해 들어 영불해협을 건넌 난민 수가 급증하며 양국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영국 언론들은 올해 약 2만 5700명이 배를 타고 영국으로 건너갔으며 이는 지난해의 3배에 달하는 규모라고 전했다. 이에 영국에선 프랑스가 유럽연합(EU)을 떠난 영국에 앙갚음하려고 난민 이동을 적극 단속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했고, 여론에 떠밀린 영국 정부는 프랑스 측에 강력 항의했다.
결국 프랑스는 지난 16일 북부 됭케르크 인근 그랑드생트에 있는 난민촌을 폐쇄하고 이곳에 있던 1500명가량의 난민을 해산시켰다. 불법 이민 알선 혐의자 35명도 체포했다. 아울러 프랑스 내무부는 이번주 난민 횡단을 막기 위한 영국과의 협정에 따라 전지형 차량, 쾌속정, 야간 투시경 등 1100만유로 규모의 새로운 장비를 배치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영국의 불만을 의식한 듯 마크롱 대통령도 이날 올해 초부터 경찰 600명을 투입해 북부 해안지대에서 밀입국 알선업자 1552명를 체포하고 밀항조직 44개를 해체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그러면서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영국으로 불법 도항하려는 시도가 연초부터 4만 7000여건에 달한다. 우리의 구조활동으로 7800명을 구출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