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절벽보다 무서운 재초환…그들이 추진위 미루는 이유

by황현규 기자
2021.06.15 16:10:16

안전진단 후 특정일 기준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사실상 ‘거래 정지’ 선고…서울 37개 단지 사정권
추진위 설립 미뤄 온 재건축 아파트
“설립하자니 재초환 걱정, 안하자니 거래절벽 우려”

[이데일리 황현규 기자] “안전진단 이후부터 조합원 지위 양도 막힌다고요? 그래도 추진위 설립 서두르지 않으려고요. 급하게 했다가 초과이익환수금만 늘어나면 어떡하죠?” (서울 강남권 B아파트 주민)

정부가 재건축 조합원의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기한을 앞당기겠다고 발표했지만, 안전진단을 통과한 아파트 단지들은 여전히 추진위 설립을 미루는 모습이다. 안전진단 이후 거래가 급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안전진단 이후 단계로 빨리 넘어가는 데는 주춤한 모양새다. 바로 초과이익환수제 때문이다. 섣부르게 추진위를 빨리 설립하면 재건축 초과이익환수금을 과도하게 내야 할 수 있단 우려에서다.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거래절벽보다 무서운 초과이익환수제’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사진=뉴시스 제공)
15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앞으로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 아파트는 안전진단 통과 이후부터 조합원 지위 양도가 제한될 수 있다. 지자체가 안전진단을 마친 단지를 대상으로 ‘특정 기준일’을 별도로 지정, 지위 양도를 제한할 수 있게 됐다. 이제까지 조합설립인가 이후부터의 적용받던 규제가 앞당겨진 셈이다.

심지어 이미 안전진단을 통과한 재건축 단지도 규제대상이 되면서, 안전진단 이후 추진위를 미뤄왔던 아파트 단지들도 규제 영향을 받게 된다.

부동산 114에 따르면 서울 내에서 안전진단을 통과만 한 뒤 조합 추진위를 만들지 않은 재건축 단지는 총 37곳에 달한다. △양천구 14곳 △강남구 8곳 △서초구 2곳 △송파구 2곳 △강동구 3곳 △성동구 1곳 △광진구 1곳 △구로구 1곳 △노원구 1곳 △동대문구 1곳 △마포구 1곳 △영등포구 1곳으로 집계됐다.

조합원 지위 양도가 제한될 시 거래절벽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로 벌써부터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최근 안전진단을 통과한 양천구 목동신시가지6단지 주민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것도 모자라 조합원 지위 양도도 제한됐다”며 “사실상 거래를 하지 말라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안전진단 이후 조합원 지위 양도가 제한되는데도, 사업 속도를 당기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다음 단계인 추진위 설립까지 서두르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크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바로 초과이익환수제 때문이다.



안전진단을 통과한 강남권의 B아파트 주민도 “안전진단 이후부터 거래 절벽이 나타나겠지만, 그래도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섣부르게 추진위 설립을 빨리하면 안된다는 목소리가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추진위를 설립한다해서 추후 사업 진행이 빨라진다는 보장이 없을 뿐더러 오히려 설립 이후 여러 변수로 사업 진행이 느려지면 초과이익환수금만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초과이익환수제는 추진위 설립시점과 사업종료 시점을 기준으로 매겨지는데, 조합원 평균 3000만원 이상의 개발 이익이 생기면 이 중 50%를 정부가 가져가는 제도다. 즉 추진위 설립시점의 주택 가격과 사업 종료시점의 주택가격이 클 수록 환수금액은 더 커진다. 추진위 설립 이후 사업 지연이 길어질수록 환수금액은 커질 수밖에 없어 조합은 사업에 대한 청사진이 구체적으로 그려지기 전까지 추진위 설립을 미뤄오는 게 관행이었다.

실제 강남구 압구정1구역의 경우 2014년 안전진단을 통과한 이후 6년간 추진위 설립을 미뤄왔다. 결국 지난해 말 추진위를 만들었고, 현재 조합 설립을 앞두고 있다. 인근 K공인은 “안전진단만 통과됐다는 것은 주민들이 마음만 먹으면 재건축이 가능하다는 의미”라며 “이후 주민들은 섣부르게 추진위를 만들기보단 구역지정 현황과 시장 상황을 보면서 사업을 추진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전진단 이후 거래가 막힌다고 해도 이게 무서워 굳이 추진위를 빨리하려는 단지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련 법이 통과할 가능성이 있느냐에 대한 의구심도 큰 상황이다. 조합원 지위양도 제한 시점을 당기려면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지난해 6·17대책에 포함된 ‘재건축 조합원 2년 의무거주’ 방안의 경우 아직까지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오히려 주민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인허가 속도를 당겨주는 등 규제 완화책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 시장이 재건축 활성화를 공약으로 내건 만큼 규제가 아닌 또 다른 ‘당근책’이 나올 수 있단 분석이다. 이 때문에 가시적인 규제 완화책이 나오기 전까지 추진위 설립을 기다리자는 반응도 감지된다.

노원구 상계동 상계11단지 주민은 “현재는 추진위 설립에 대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설립 이후 사업 속도가 빨라진다는 보장이 생긴 이후에서야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도 “오세훈 서울시장이 당선된 이후 재건축 아파트 주민들의 기대감이 컸지만, 현재 실망감이 커지고 있다”며 “결국 규제 외에 사업추진을 빠르게 해줄 유인책이 나와야지만 재건축 아파트의 불필요한 혼란을 방지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