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라면 나가야지"…택배기사·미화원들, 백신 이상반응에도 일터로
by조민정 기자
2021.08.03 16:09:18
17일부터 필수업무 종사자 백신 우선 접종
"롯데택배 제외 백신휴가 제도 전무한 상황"
백신휴가 제도 있어도 실제 사용하기 어려워
"내가 쉬면 누가 일하나…동료에 업무 부담"
[이데일리 조민정 기자] “백신휴가? 그냥 (일하러) 나오라면 나오는 거지. 우리가 뭐 쉬고 싶다고 쉴 수 있나”
이번 주부터 택배기사, 환경미화원 등 우선 접종 대상자를 대상으로 백신 사전예약이 시작된다. 하지만 백신 접종 후 후유증이 있어도 쉬는 날 없이 일터로 내몰리는 이들에게 백신휴가는 ‘그림의 떡’이다. 제도가 있어도 눈치가 보여 쓰지 못하거나 현실적이지 않은 세부지침으로 사실상 사용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 7월 12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복합물류센터에서 택배 관계자들이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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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추진단)은 3분기 주요 접종 대상인 18~49세 중 택배근로자나 환경미화원 등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우선 접종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약 200만명에 대한 순차 사전 예약을 3일부터 시작한다. 대중교통 근무자, 콜센터 직원 등도 대상이다.
다만 우선접종 대상자에 포함된 이들 중 대부분은 백신 접종 후 이상증상이 나타나도 일터로 나가야 한다. 회사가 마련한 백신휴가 제도가 없어서다.
지난 3월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백신 이상반응으로 근무에 어려움을 겪으면 백신휴가를 부여할 것을 권고했지만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적지 않다. 백신휴가는 코로나19 백신 접종 이후 고열, 어지러움 등 이상반응이 나타날 경우 의사 소견서 없이 유급휴가를 받을 수 있는 제도로, 최대 2일까지 사용 가능하다.
3년 반가량 택배배송 업무를 해온 김모(27·남)씨는 우선 접종 대상자로 이번 주 중으로 백신 접종을 예약할 예정이다. 김씨는 “백신 후유증이 있다고 하는데 백신 휴가 자체가 없어서 맞아도 걱정”이라며 “사실 휴가가 있어도 쓰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서울 관악구에서 환경미화업무를 하는 박모(73·여)씨는 지난 5월 29일 백신 접종을 완료했지만 백신휴가 제도는 처음 들었다고 답했다. 박씨는 “저번에 백신을 맞고도 그냥 매일같이 나와서 일했다”며 “우리 남편이 일하는 곳은 쉬게 해주던데 우리는 (근무를) 빼주는 건 없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택배회사의 경우 롯데글로벌로지스(롯데택배)와 CJ대한통운이 백신휴가를 보장하고 있다. 한진택배, 로젠택배 등에 종사하는 택배기사는 접종 다음날 바로 출근한다. 이상반응을 느껴도 근무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백신 접종 후 출근한 택배기사들이 이상증세를 보인 사례도 발생했다. 지난달 19일 오후 1시 백신을 접종한 이모(39)씨는 다음날 한진 기흥터미널로 출근했다. 분류작업을 하던 이씨는 오전 10시 45분쯤 심한 오한을 느꼈고 자리에서 쓰러져 응급실로 옮겨졌다.
한진택배기사 김모씨는 지난달 14일 백신접종 후 다음날 출근해 이상증세를 느꼈다. 김씨는 아파트 배송 도중 차량을 멈춰 세운 뒤 1시간 30분가량 졸도해 병원에서 링거 치료를 받기도 했다.
| 지난달 13일 환경미화원이 코로나19 서울시 동작구 예방접종센터에서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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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휴가 제도가 있더라도 실질적으로 사용하기 어려운 곳도 있다. 내달 접종을 완료해야 휴가 혜택을 받을 수 있거나 현실적으로 대체인력이 부족해 제도가 있어도 쓰기 힘들어서다.
경기도의 한 버스회사는 접종 시 유급휴가 이틀을 부여하고 있지만 이달 내로 접종을 완료해야 휴가를 받을 수 있다. 백신접종 날짜는 예약 시 임의로 배정되는 구조인데다 이번 필수업무 종사자 접종 기간은 내달 11일까지다. 접종자가 원하는 날짜를 선택할 수 없어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인천에서 시내버스기사로 근무 중인 김모(38·남)씨는 “백신휴가 제도가 (회사에) 마련돼 있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좋지만, 날짜를 지정한 점이 조금 애매하긴 하다”며 “9월에 1차 접종을 하면 휴가를 못 받는 건가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서울 관악구에서 환경미화업무를 하는 원모(70·여)씨는 함께 일하는 동료가 이상 증상이 있음에도 출근을 강행했다고 말했다. 원씨는 “어떤 아저씨는 (근무를) 빼준다고 하는데도 눈치 보여서 그런지 그냥 나와서 근무했다”고 설명했다.
본인이 백신휴가를 사용할 경우 동료가 그만큼 일해야 하거나 업무 공백이 생긴다는 우려도 휴가 사용을 막는다. 지난달 20일 CJ대한통운 택배기사 안모(34)씨는 백신을 접종한 후 움직일 수 없는 근육통과 두통을 느껴 출근하지 못했다. 이날 안씨의 업무는 동료기사들이 맡았다.
7년간 우체국 집배원으로 근무한 채모(41·남)씨는 “제도가 없는 것도 문제이지만 사실 있더라도 현실적으로 쉴 수가 없다”며 “내가 일을 안 나가면 대신 일할 사람이 없으니 동료들이 고생한다. 쉬면 안 된다”고 전했다.
김하늬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사무차장은 “백신휴가 자체가 고용형태별, 사업장별로 차별이 있다”며 “제대로 제도가 시행되지 않아 쉴 수 없는 노동자가 많은 부분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