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부패에 날개 꺾이다…우샤오후이 안방보험 회장의 추락(종합)

by이정훈 기자
2017.06.16 17:15:55

2014년말 이후에만 43조원 해외 M&A 공세
前보감회 주석과 비리 연계설…보험상품 규제위반설도
해외 M&A 힘들어져…"그룹 붕괴는 없을 듯"

우샤오후이 안방보험 회장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그 호텔을 인수하기 위해 나를 포함한 우리 팀이 이용한 항공기 마일리지를 다 합치면 아마 지구에서부터 달까지를 왕복할 수 있을 정도는 될 겁니다.” 지난 2014년 10월 뉴욕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을 힐튼으로부터 19억5000만달러(원화 2조2000억원)에 사들인 우샤오후이(吳小暉) 안방보험 회장은 그로부터 몇 개월 뒤인 2015년 1월 하버드대에서 개최한 현지 채용 행사에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그 이후부터 우 회장의 글로벌 인수·합병(M&A) 행보는 거칠 것 없었다. 2015년 7월에 영국 런던의 시티오브런던에 있는 46층 짜리 고층 빌딩인 헤론타워를 11억7000만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고 지난해에는 55억달러를 들여 미국 스트래티직 호텔 리조트를 사들였다. 올들어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맏사위인 제러드 쿠슈너 가문이 가진 맨해튼 5번가 부동산을 4억달러에 인수했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힐튼의 더블트리 호텔도 3억9000만달러에 샀다. 끝내 철회하긴 했지만 미국 스타우드 호텔 리조트도 154억9000만달러는 천문학적 금액으로 인수하기로 합의한 바 있었다. 2014년말 이후 해외에서 M&A에 쏟아부은 돈만 380억달러(원화 약 42조9000억원)에 이르렀다.

이처럼 해외 M&A시장에서 큰손 행세를 하며 위세를 떨친 우 회장이었지만 정작 중국내 정치적 압박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강력하게 밀어부치고 있는 반(反)부패 캠페인에 우 회장이 타깃으로 걸려 들었다는 루머는 이미 수 개월전부터 나돌았었다. 그리고 지난 9일 중국 유력잡지인 차이징(財經·caijing)은 우 회장이 당국에 의해 연행됐다는 기사를 보도한 뒤 잠시후 기사를 삭제했고 그로부터 나흘 뒤인 13일 안방보험측은 “우 회장이 개인적인 이유로 회장직을 일시적으로 수행하지 못하게 됐다”고 밝혔다.

안방보험의 글로벌 M&A 추진 현황




사실 우 회장은 덩샤오핑의 손녀 딸과 결혼하면서 중국 내에서는 왠만해선 건드리지 못할 인물로 손꼽혀왔다. 그런 그가 갑작스럽게 회장에서 물러나고 당국으로부터 수사받고 있다는 루머가 나도는 것은 시 주석의 반부패 드라이브와 관련됐다는 의심을 낳게 한다. 일각에서는 지난 4월 비리혐의로 전격 낙마한 샹쥔보(項俊波) 중국 보험감독관리위원회(보감회) 주석 겸 당서기(장관급)과 관련된 비리혐의를 받고 있다는 추측을 하고 있다. 사실 샹쥔보 주석은 금융그룹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해 주면서 안방보험과 같은 대형 금융회사들이 공격적인 M&A나 리스크가 높은 투자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또다른 가능성은 안방보험이 중국 금융규제를 상습적으로 위반한 것과 관련돼 있을 수 있다는 것. 앞서 중국 보감회는 지난 5월 안방보험이 규제를 위반한 상품을 판매했다는 혐의로 안방보험의 계열 생명보험사들의 일부 투자상품 판매를 금지시켰고 3개월간 신규 보험상품 승인도 중단한 바 있다. 안방보험은 그동안 자사 보험상품이 자체 온라인이나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판매되고 있어 경쟁사보다 자본비용이 낮다고 언급해왔다. 이 탓에 안방보험 생명보험은 4월에 신규 보험료 수입이 99%나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안방보험은 이렇게 단기 상품으로 조달한 자금으로 투자 회임기간이 긴 장기 투자에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내에서 최근 3년간 여러 기업인들이 온갖 이유로 당국에 체포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결국 풀려났다. 예를 들어 지난 2015년말 `중국의 워런 버핏`으로 불리던 상하이 푸싱그룹 궈광창 회장은 구금돼 종적을 감췄지만 나중에 구금상태에서 풀려났다. 그러나 안방보험의 경우 우 회장이 복귀하게 되더라도 자국내에서 자금 조달 길이 다시 생기지 않을 경우 지금과 같은 해외 M&A는 더이상 하기 어려워진다. 진행중인 딜도 포기해야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안방보험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저하된 만큼 또다른 유동성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안방보험은 여전히 2500억~3000억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중국 당국이 그룹 붕괴를 두고 볼 수만은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홍콩에 있는 투자컨설팅업체인 카이위안캐피탈 브락 실버스 대표는 “올 가을 제19차 공산당 대회에서 권력 강화를 노리고 있는 시 주석으로서도 안방보험처럼 거대하고 여러 계열사가 얽혀있는 재벌을 무너뜨릴 순 없을 것”이라며 “중국 경제를 너무 불안정하게 만들 결과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