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 세지는 트럼프식 으름장…마땅한 실효 대책 없는 정부

by김형욱 기자
2018.02.19 17:26:02

美 11월 중간선거 앞두고 보여주기식 성과 ''혈안''
철강까지 번진 통상압력…車·반도체 확대 ''우려''
정부 "비공식루트 설득 강화…WTO 제소도 검토"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세종=이데일리 김형욱 김상윤 기자] 무역 제재 카드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으름장’이 한층 거세지고 있다. 세탁기, 태양광, 철강으로 이어진 통상압박이 자동차나 반도체로 번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정부도 대응책을 내놓고 있지만 물밑 대화를 늘리는 것 외에 뾰족한 방안이 없다.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 공세는 더 거세질 전망이다. 올 11월 미 중간선거를 앞두고 어떻게든 유권자에게 보여줄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함께 한·미FTA는 유권자를 설득할 가장 큰 먹잇감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최근 NAFTA 재협상 논의 동향과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리포트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이 11월 중간선거에서 진다면 3년 후 대선 후보로서의 당내 위상이 약화할 수 있다”며 “트럼프 정부가 선거 승리를 목표로 정치적 판단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실제 미국의 통상 압력은 올 들어갈수록 커지고 있다. 올 1월22일(이하 현지시간) 세탁기와 태양광제품에 대해 관세를 매기는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를 발동한 데 이어 지난 16일 사실상 사문화한 ‘무역확장법232조’를 꺼내 들었다. 무역확장법232조는 단순한 통상 불균형이 아니라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시행하는 수입 제한 조치다. 미 상무부는 지금껏 사문화된 이 조치를 꺼내 들어 한국에 최대 53%의 관세 부과를 미 백악관에 전달했다. 아직은 권고안이지만 실제 시행된다면 약 3조5000억원 규모의 한국 철강 대미 수출은 큰 타격을 입는다.

더 큰 문제는 전방위 통상압력이 여기서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사문화한 무역확장법 232조까지 꺼내 든 만큼 이를 자동차, 조선, 항공기, 반도체 등 다른 분야로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은 지난해부터 반도체 등에 대한 관련법 적용 가능성을 언급해왔다.



실제 미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자국 기업의 특허침해 주장을 받아들여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를 대상으로 특허침해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ITC가 이를 인정하면 해당 제품은 수입이 금지된다. 미 제네럴모터스(GM)의 군산공장 폐쇄 결정도 이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3일 회의에서 이를 언급하며 “내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이런 소식을 들어본 적 없을 것”이라며 “내 감세 정책 덕분이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수치=철강협회)




정부도 대책 마련을 고심하고 있지만 대화 외에 산업계의 우려를 줄일 만한 실효성 있는 대응책은 아직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미국 수입규제 확대를 거론하며 당당하고 결연히 대응해 달라고 주문했으나 물밑 대화 외엔 이렇다 할 방안이 없는 것이다.

강성천 산업통상자원부 차관보는 “미 정부와 의회, 업계에 대한 ‘아웃리치(외부 접촉)’ 대상을 더 높은 사람 중심으로 넓혀 나가겠다”며 “미국 측 오해와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객관적 통계를 기반으로 설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도 곧 미국을 찾아 주요 인사를 만난다. 특히 미국 내에서 한국 철강을 필요로 하는 업체의 목소리를 정부, 정가에 전달할 계획이다. 최근 한국의 대미 흑자 규모가 줄고 있다는 점도 어필할 예정이다.

그러나 기존 자유무역 질서 논리와는 무관하게 선거를 앞두고 정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미 정부의 변화를 이끌기는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온다. 문종철 산업연구원 국제산업협력실 연구위원은 “232조뿐 아니라 최근 이어지는 보호무역 조치에 대해 우리가 미국 움직임을 바꿀 방법은 없다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설마 동맹인데’란 안이한 기대가 있었다. 대통령이 심각하게 트럼프 대통령과 담판하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강 차관보 역시 지금까지도 ‘아웃리치’가 꾸준히 이어져 왔으나 변화가 없었다는 지적에 대해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더욱 어렵다”고 답했다. 상황에 따라 무역확장법232조 조치에 대해 WTO에 제소하는 안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그땐 한미가 ‘강 대 강’으로 대치하는 모양새가 돼 한·미 FTA 재협상 때 실리를 잃을 수 있다는 게 정부의 딜레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달 10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여자 예선전을 관람하기 위해 입장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