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戰 계기 세계 무역 흐름 바뀔까..푸틴이 그리는 그림은?
by방성훈 기자
2024.08.29 16:07:48
서방 배제한 물류 인프라 추진…인도·中·이란과 협력↑
수요 불확실성은 우려…기존 물동량도 턱없이 부족
자금 확보도 문제…러·이란에 의존, 민간 투자도 요원
"중국, 인도 등 필요할 때만 싼맛에 러와 교역할수도"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새로운 무역 활로를 모색함에 따라 국제남북운송회랑(INSTC) 개통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감행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코노미스트는 28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제재로 서방과 교역이 단절되더라도 경제가 번영할 수 있도록 인프라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할 계획”이라며 “향후 10년 동안 아시아 및 중동의 중요한 무역 파트너와 국가를 연결하는 운송로 건설에 700억달러(약 93조원)를 투자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이 자금은 러시아 극동 지역과 북부 인프라 건설에 가장 많이 투입되고, 이란을 경유해 러시아와 인도양을 연결하는 INSTC에도 상당 자금이 쓰일 것으로 예측된다. 러시아 정부 관리들은 “모든 비(非)서방 무역로를 따라 물류량이 증가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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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그동안 유럽과의 교역만으로도 충분한 수익을 거뒀기 때문에 중국이나 이란 등과 연결하는 인프라 구축에는 소극적인 반응을 보여 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의 상품 흐름은 이미 중국과 인도 등 서방의 제재에 동참하지 않은 국가들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의 러시아산(産) 석유 수요로 러시아와 중국 간 무역액은 지난해 2400억달러(약 320조원)를 기록했다. 역대 최대 규모로 2021년 이후 3분의 2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흑해와 에게해를 잇는 보스포러스 해협에 추가 제한 등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만큼, 수출 촉진 및 외부 간섭으로부터 교역을 보호하기 위해 러시아가 우호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가장 교역이 활발한 중국과는 자연 국경인 아무르 강을 가로지르는 첫 번째 철도 교량을 2022년에 개통했으며, 추가 교량도 지난해 승인했다. 러시아는 2030년까지 북극 해안선을 따라 중국 동부로 이어지는 해상 교통로인 북해 항로의 화물량을 현재 3600만톤에서 2억톤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이란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방의 제재로 기피 교역 대상이었으나, 러시아가 동일한 상황에 놓이면서 양국은 교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INSTC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그 일환으로 러시아는 지난해 이란의 라슈트-아스타라 철도에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 철도는 20년 전 건설 승인을 받았음에도 완공되지 않은 상태였다.
푸틴 대통령은 “INSTC가 완공되면 이란을 중동, 아시아, 그보다 더 먼 곳으로 향하는 러시아 상품의 출구로 바꾸고, 세계 물류 흐름을 상당히 다양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도의 러시아산 석탄 및 석유 수요도 최소 2030년까지 강세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여전히 장애물이 산적해 있다는 진단이다. 우선 새로운 노선의 용량이 늘어나도 상품 수요가 함께 증가할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실례로 2022년 INSTC를 통해 철도로 운송된 상품은 800만톤에 그쳤다. 전체 용량인 1400만톤에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또한 러시아와 중국 간 무역이 급증했음에도 러시아 동부 철도는 지난해 공표된 용량보다 13% 적은 상품을 처리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 동부 철도 중 하나인 바이칼-아무르 철도는 대부분 끊어져 있고, 이 지역의 항구와 철도 역시 수십년 간 방치돼 수리가 절실한 상황”이라며 “중국과 러시아 간 무역 불균형으로 러시아 극동 지역에는 약 15만 개의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고 전했다.
북해 항로 역시 2050년에야 빙하가 없는 겨울을 맞이할 것으로 예상돼 이 때까지는 연중 이용이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시베리아와 중국 북동부를 잇는 파이프라인 ‘시베리아의 힘 2’(Power of Siberia 2) 프로젝트 협상은 중국의 보조금 요구로 중단됐다.
인프라 구축을 위한 자금도 문제다. 미국 국방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에 2000억달러(약 267조원) 이상을 쏟아부은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의 10%에 해당하는 지출이다. 전쟁이 장기화함에 따라 러시아 정부의 재정 적자는 계속 확대하는 추세다.
아울러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이 러시아의 INSTC 구축을 지원하기 위해 자국 내 철도 및 도로 인프라를 개선하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자금 조달은 러시아와 이란에 의존하고 있다. 2022년 기준 전체 노선 투자의 68%가 러시아와 이란에서 나왔다.
그런데 이란은 현금이 부족하고, 민간 투자 역시 요원하다. 러시아 분석업체인 셰르파그룹은 러시아 국영 운송 프로그램에 대한 민간 투자가 2022년 9270억루블(약 13조 4500억원)에서 2026년 1800억루블(약 2조 6100억원)로 쪼그라들 것으로 내다봤다.
이코노미스트는 “푸틴 대통령이 인프라에 많은 돈을 쓸 계획이지만 소극적인 민간 부문 때문에 좌절될 수 있다”며 “또한 그동안 러시아의 인프라 실적이 형편 없음에도 장거리 인프라 구축을 추진한다는 점, 악천후와 공무원들의 부패, 노동력 및 전문성 부족, INSTC 참여국 간 불화 등은 프로젝트 실현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서방의 제재를 받지 않는 국가들은 러시아의 제한적인 대안을 활용해 강력한 거래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중국과 인도는 궁극적으로 가격이 적절할 때에만 러시아의 경제 성장을 이끌 것이고, 이는 푸틴 대통령에게 고민거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