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갈등 파국 피했지만..증원 걸림돌에 의대 교수들 사직 행렬
by이지현 기자
2024.03.25 16:19:41
26일 진료거부 전공의 면허정지 행정처분 유예 결정
고려대·아산병원 교수들 집단 사직..서울대도 회의
[이데일리 이지현 김윤정 기자] 산 넘어 산이다. 대화의 물꼬가 트이는 듯했던 의정 갈등이 다시 ‘2000명 증원 철회’라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정부는 이미 대학별 배정까지 완료한 상황에서 돌이킬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전국 40개 의대 교수들은 증원 철회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다. 그러면서 25일 집단 사직서 제출을 강행하고 있다.
김창수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회장은 25일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의대 증원) 철회 의사가 있다면 국민 앞에서 모든 현안을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정부의 증원과 정원 배정 철회 없이는 사직서 철회도 없다는 것이다.
의대 교수들은 사직서 제출을 시작했다. 고려대의료원 산하 3개 병원(고대구로·안산·안암병원)의 전임·임상교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이날 오전 총회를 열고 “의대생·전공의와 함께 바른 의료정책으로 향하고자 사직서를 제출한다”며 미리 준비한 사직서를 강당에 있는 수거함에 넣고 퇴장했다.
| 정부의 의대 정원 배분에 반발한 전국 의대 교수들이 집단 사직서 제출을 예고한 25일 서울 시내 대학 병원에서 의료진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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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의대 비대위는 이날 온라인으로 사직서류를 모아 한꺼번에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연세대 비대위는 “정부는 객관적인 근거 없는 2000명 증원을 철회하고 진실한 태도로 협상의 장을 마련하라”며 “보내준 사직서는 일괄 출력해 의대 학장에게 오늘 오후 6시에 제출하겠다”고 했다.
울산대 의대에서도 이날 교수 433명이 사직서를 던졌다. 서울아산병원과 울산대병원, 강릉아산병원을 수련병원으로 두고 있는 울산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는 이날 성명서에서 “정부는 의대 학생, 전공의, 전임의, 교수가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근거 없는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철회하고 당장 진정성 있는 대화의 장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도 이날 오후 총회를 열고 관련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의대 2000명 증원 계획을 변경할 수 있을까. 정부는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은 대학의 신청과 위원회 심의를 거쳐 이미 대학별 배정이 완료됐다. 해당 정원은 고등교육법령에 따라 국가가 인력 수급과 관련해 정책적으로 결정하는 사항으로 대학이 임의로 정원을 변경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의대 정원 배정 이후 대학은 변동된 정원을 반영해 2025학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 변경을 신청하고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이를 승인해 2025학년도 대학별 모집인원이 확정된다. 해당 절차는 2025학년도 대학입학전형 기본사항에 따라 올해 5월 말까지 마무리된다.
그럼에도 의대 교수들이 사직을 강행하는 이유에 대해 한 전문가는 내부 의견이 통일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봤다. 어떤 이들은 현장에서 환자를 지키면서 정부와 대화해야 한다고 보지만 강경파는 정부의 전면 철회 없이는 대화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대표로 나선 이들은 이들의 의견을 모두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의대 교수들 사이에서 내분이 나오면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는 의료계와의 대화의 장을 만들고자 이날로 의견 제출 기한이 끝나는 전공의 35명에 대한 면허정지 처분을 26일에서 이후로 연기한다. 총선이 마무리는 4월 13일 이후가 될지 한 달간의 시한을 더 줄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다만 의료계와의 대화를 통해 논의를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의대 교수들도 처음에는 전공의 등 학생들이 다치지 않게 해야 한 걸 명분으로 했는데 (전공의)면허정지 행정처리가 정지된 상황이라 그 명분마저 없어져 그나마 다행”이라며 “의대정원이 학교별로 배분된 건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의대 교수들도 알게 되면 (의대 교수의 집단행동)동력이 상실될 것”이라며 말했다.
의대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도 큰 의미가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전공의들과 달리 교수들은 직업이기에 이를 내려둘 사람이 많지 않은데다 수리될 가능성도 작기 때문이다.
사직을 결의한 주요병원 교수들의 사직서는 실제로 인사팀 등에 제출되지 않은 상태였다. 아산병원 관계자는 “3개 병원의 겸임교수까지 더하면 600여명, 임상교수까지 추가하면 900명 정도”라며 “하지만 아직 병원과 학교로 사표가 제출된 것은 한 건도 없다”고 설명했다.
전의교협은 사직이 시작되는 이날부터 주 52시간 이내 외래진료·수술·입원 진료 수준을 유지할 방침이다. 내달 1일부터는 외래진료를 최소화한다. 조승연 지방의료원연합회장은 “제일 큰 문제는 병원 운영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라며 “정부가 대학병원 지원해준다고 확신시켜주면 병원이 나서서 구조조정하려 할 것이다. 이런 언급이 없어서 아쉽다”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는 의대 교수들의 집단 사직서 제출계획 등을 철회하고 환자 곁에서 환자생명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전공의들이 먼저 조건 없이 의료현장에 복귀해 진료 정상화에 협력하고 사회적 대화에 참여해야 한다”며 “수련병원들도 전공의들의 조속한 복귀와 의대교수들의 진료 유지 등 진료 정상화를 위해 총력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전공의에 이어 의과대학 교수들의 집단 사직까지, 극단으로 치닫는 초유의 의·정 갈등 속 현실화되는 환자들의 피해를 외면하지 말라”며 “양측이 각자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서가 아닌 환자중심의 의료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나서달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