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차 학살'에 전세계 경악…푸틴, '전범' 처벌 가능할까[글로벌Q]

by방성훈 기자
2022.04.05 15:27:34

ICC, 조사 착수했지만 기소만 가능…재판은 불가능
푸틴 재판대 세우는게 가장 큰 걸림돌
별도 재판소 개설 및 미·독 자체 조사도 마찬가지
미래 러 정권 교체되면 처벌할수도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뉴욕=김정남 특파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부차 지역에서 민간인 대학살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세계가 경악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각국 주요 인사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두고 맹비난을 퍼부으면서, 전범 재판에 세우기 위한 정보 수집에 본격 착수했다. 푸틴 대통령을 국제법에 따라 실제 재판에 세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AFP)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을 공격했다면 이는 전쟁범죄에 해당한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제네바 협약에 대한 중대한 위반을 전쟁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제네바 협약은 전투에 참가하지 않는 인명을 함부로 살상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의 국제협약으로 인도주의를 따르는 국제법의 기초다. 전쟁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으며 아무나 죽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전쟁범죄를 다루는 국제 사법기구는 개인의 전쟁 범죄 문제를 다루는 국제형사재판소(ICC), 국가간 분쟁을 다루는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있다.

ICC는 집단 학살, 반인도적 범죄, 침략 범죄, 전쟁 범죄 등을 저지른 개인을 형사 처벌하기 위해 2002년 설립한 첫 상설 국제재판소다. 123개 회원국들을 포함해 관할구역으로 정한 국가에서 기소된 인물이라면 누구든 재판할 수 있다. 4가지 범죄 중 푸틴에게 적용된 혐의는 침략범죄를 제외한 3가지다. 앞서 영국을 포함한 39개국은 지난달 2일 우크라이나 민간인을 ‘의도적으로’ 공격한 혐의로 ICC에 러시아를 제소했다. ICC는 조사에 착수했고, 최근 부차에서의 집단학살 혐의도 추가됐다.

우크라이나가 2013년 말 ICC의 관할권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푸틴 대통령을 재판에 세우는 건 원칙적으로 가능하다. 다만 러시아는 2016년 크림반도 평결에 반발해 ICC에서 탈퇴했다. ICC가 요구하면 푸틴이 재판에 참석해야 하는데 러시아가 ICC 권한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여기에 응하지 않을 게 뻔하다. 푸틴이 러시아 정부로부터 인도되거나 러시아 외부에서 체포돼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하다. 푸틴이 참석하지 않으면 재판은 열리지 않는다.

△ICJ의 경우 더 험난하다. 러시아를 유죄로 판결하더라도 그 집행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맡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 중 하나다. 러시아가 비토(거부)하면 통과가 불가능하다.

정작 러시아는 전쟁 범죄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공개한 민간인 학살 정황이 러시아를 비방하기 위해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유럽연합(EU), 미국 등 전쟁 관련이 있는 기구 또는 국가가 푸틴을 피고인으로 세울 수 있는 국제 전범 재판소를 개설하는 방법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1945∼1948년 나치 독일 전범을 처벌하기 위해 독일에 개설한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이나, 일본군 전범을 처벌하기 위해 1946년 일본 도쿄에 개설된 극동국제군사재판 등의 전례가 있다. 당시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통도 재판대에 서지 않았지만 심판이 이뤄졌다. 국제사회가 연합해 전범 재판을 열 국가를 지정할 수는 있겠지만, 이 역시 푸틴을 실제로 재판에 참석하게 할 수 없다는 점이 한계다.

이외에도 특정 국가가 자국법을 적용해 자체적으로 전범을 재판할 수 있다. 독일은 이미 푸틴을 상대로 조사에 착수했다. 미국의 경우 관련법은 없지만 법무부 차원에서 러시아의 학살, 고문, 소년병 징집, 여성 신체 훼손 등을 포함한 혐의를 들여다보고 있다. 마찬가지로 푸틴의 신병을 인도받을 수 있는 길이 없다.

(사진=AFP)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내전을 일으킨 ‘발칸의 도살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대표적이다. 그는 1999년 유엔 산하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에 기소돼 2001년 체포됐다. 전쟁 범죄, 학살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다가 2006년 감옥에서 사망했다.

1990년대 라이베리아 내전을 일으킨 뒤 2003년까지 대통령을 지냈던 독재자 찰스 테일러도 잔혹한 전범으로 이름을 남겼다. 그는 지난 2012년 ICC 산하 시에라리온특별법정(SCSL)에 세워져 징역 50년형이 선고됐다.

푸틴 처벌 가능성과 관련해선 ‘다르푸르 학살’을 일으켰던 수단의 독재자 오미르 알바시르 사례가 거론된다. 알바시르는 2009년 기소되고도 10년간 대통령으로 재임했지만 2019년 쿠데타로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수단 정부는 지난 해 8월 ICC와 알바시르를 넘기기로 협약하고 신병 인도를 추진하고 있다.

당장은 힘들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러시아가 내부 쿠데타로 체제가 전복되거나 정권이 교체될 경우 가능성이 아예 없지 않다는 얘기다. 미래에 푸틴이 ICC 회원국을 방문했을 때 해당 국가가 협조해 푸틴을 체포하고 ICC에 넘길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