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구한 생존자 "딸 같은 아이들인데..혼자만 살아남아 죄송합니다"
by김민정 기자
2014.07.23 17:22:05
[이데일리 e뉴스 김민정 기자] 세월호 참사 99일째인 23일 탈출보다는 다른 승객들의 구조를 먼저 선택했던 일반인 탑승객 화물차 기사 김모(49)씨가 법정에 섰다.
이날 광주지법 법정동 제 201호 법정에서 열린 이준석 선장 등 승무원 15명에 대한 다섯 번째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김씨는 실종자 가족과 유가족에게 “끝까지 자리를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증언에 나선 김씨는 “사고 당일 3층 선미 좌현 첫 번째 방인 화물기사실에 자리하고 있었다”며 “아내와의 전화통화가 끝난 뒤 곧바로 배가 기울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주변을 살펴보니 큰 배 한 척과 헬리콥터도 오는 것이 보여 계단을 통해 4층으로 내려갔다”며 “B-18 4층 우현 출입문을 보니 다른 승객들(남학생·선생님)이 커튼을 이용, 구조활동을 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김씨는 “4층 우현에 있던 (수도용) 호스를 가져와 건넸다. 끌어 올리려는데 호스가 늘어나 어려웠다”며 “같은 층 우현 갑판 쪽 상자 안에 소방호스가 있었다. 소방호스를 의자에 묶고 학생들을 구조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이 “몇 명이나 구조했는지 기억이 나느냐”고 묻자 김씨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시에는 구조에만 매진했다”고 말했다.
이날 법정에서 검찰 측이 공개한 사고 당시 동영상과 사진에는 김씨가 침몰하는 선체에서 구조에 힘쓴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왜 (탈출하지 않고) 서 있었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김씨는 “4층에 아직 학생들이 남아 있어서”라고 답했다. 이어 “딸이 고등학교 2학년생이다. ‘내딸이 저기있다면 누가 구하느냐’는 생각과 함께 구조에 나섰다”고 덧붙였다.
김씨가 “참사 이후 버스를 타고 밖에서 걸어가는 학생들을 보면 차가운 물에 가라앉은 학생들 생각에 괴롭다. 뜨거운 물(목욕탕)에도 들어갈 수 없다”며 후유증을 털어놓자 법정은 숙연해졌다.
승객들을 구조하기 위해 노력했는데도 오히려 미안하다는 심경을 전하는 김씨의 태도에 유가족들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임 부장판사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도망가지 않고 목숨을 구하려는 모습이 승무원들과는 대조된다. 승객들을 구하는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며 “많은 사람을 구했다는 자부심을 가져달라.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경의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