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최정희 기자
2020.03.13 16:18:04
한 날에 양 시장 모두 서킷브레이커·사이드카 발동..역사상 처음
8년전으로 돌아간 코스피..코스닥, 장중 역사상 최악의 폭락
2149개 종목 하락..외국인 1.2조 패대기 매도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이런 지옥이 없었다. ‘13일의 금요일’답게 증시는 공포에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유럽, 미국 증시가 10% 안팎의 하락세를 보이더니 도미노처럼 국내 증시를 덮쳤다. 이날 하루에만 코스피·코스닥 합해 시가총액 56조750억원이 공중에 날아갔다. 일주일 새 223조3740억원이 사라진 것이다.
증시는 역사를 새로 썼다. 코스피, 코스닥 시장에 동시에 서킷브레이커(Circuit Breakers), 사이드카(Sidecar)가 걸린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코스피, 코스닥 시장 모두 20분간 거래가 정지됐다. 코스닥 지수는 장중 13.56% 하락해 코스닥 시장에 생긴 이후 최악의 폭락세를 연출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인 대유행·pandemic), 국제유가 급락이 경기 위축을 넘어 금융위기로 갈 것이란 공포가 증시를 짓누르고 있다. 장 후반 연기금이 5700억원을 순매수, 구원 투수로 등판한 데다 캐나다에서 코로나19 백신을 생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낙폭을 줄였으나 코스피·코스닥 지수는 6~8년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코스피·코스닥 지수는 개장 직후부터 낙폭을 키웠다. 13일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코스피 지수는 이날 장중 전 거래일보다 8.38% 하락한 1680.60까지 하락했다. 유럽 재정위기 수준의 낙폭이 연출됐다. 2011년 8월 9일(-9.88%) 낙폭 이후 최악의 하락세이자 같은 해 10월 5일 1659.31까지 하락한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코스닥 지수는 장중 13.56% 하락한 487.07까지 하락했다. 코스닥 시장이 개장한 1996년 7월 1일 이후 낙폭이 가장 컸다. 지수는 2013년 12월 20일(483.84) 이후 6년 3개월래 최저다.
유럽, 뉴욕증시에서 기록적인 쓴 맛을 본 투자자들은 국내 주식 역시 패대기쳤다. 코스닥 지수는 개장 직후 4분만에 서킷브레이커가 걸렸다. 2016년 2월 12일 글로벌 증시 하락 이후 4년 1개월만이다. 서킷브레이커는 코스닥 지수가 전일 종가보다 8% 이상 하락해 1분간 지속됐을 경우 발동된다.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면 20분간 코스닥 주식 거래 자체가 정지된다. 2분이 지난, 9시 6분엔 코스피 지수에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이틀 연속 사이드카 발동이다. 코스피200선물 6월물이 5.70% 하락, 1분간 지속된 영향이다. 사이드카가 발동되면 프로그램 매도 호가 효력이 5분간 정지된다.
그러나 투자자들의 투매는 멈추질 않았다. 9시 38분경 코스닥 시장에서 사이드카가 나왔다. 작년 8월 5일 이후 처음이다. 코스닥150선물 6월물이 전일 종가보다 6.47% 하락하고 코스닥 지수 또한 7.33% 하락해 1분간 지속된 영향이다. 그 뒤로 10시 43분경, 코스피에서 서킷브레이커가 발동한다. 코스피 지수 역시 코스닥처럼 8% 넘게 1분기 하락했기 때문이다. 코스피 시장에서 서킷브레이커가 나온 것은 9.11테러 직후인 2001년 9월 12일 이후 18년6개월만이다. 코스피 시장에서 서킷브레이커가 나온 것은 이번을 포함해 네 차례 밖에 안 된다.
증시 폭락세는 이날 오후 1시반까지 지속됐다. 그러다 장 후반 연기금이 코스피 시장에서 5700억원을 순매수하며 구원투수로 등판, 낙폭을 줄이기 시작했다. 미국 펜타곤의 투자금을 받은 캐나다 메디카고 바이오 제약사가 코로나19 백신을 생산했다는 소식도 호재가 됐다. 이에 코스피 지수는 62.89포인트, 3.43% 하락한 1771.44, 코스닥 지수는 39.49포인트, 7.01% 하락한 524.00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는 종가 기준으로 각각 2012년 7월 25일(1769.31), 2014년 6월 5일(523.12) 이후 최저 수준이다. 이날 코스피·코스닥 상장종목 2149개가 하락했다. 외국인은 1조2400억원을 내다 팔았다. 개인은 4400억원 순매수했다. 연기금 포함, 기관은 6700억원 가량 매도했다.
이날 증시는 ‘금융위기’가 올 것 같은 공포감 그 자체였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에 대해 공식적으로 팬데믹을 선언한 데다 전 세계 증시를 떠받치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영 힘을 쓰지 못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자산 매입은 확대했으나 금리는 동결하면서 ‘금리 무용론’이 불거졌다. 통화정책은 물론 재정정책까지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란 두려움이 커졌다. 외국인은 증시 뿐 아니라 국채도 팔아치우면서 현금 확보에 열을 올렸다.
증권가에선 ‘금융위기가 오면 어쩌지’란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SK증권은 코로나19에 2차 감염 우려가 커지고 신용위험에 각국의 정책까지 먹히지 않는 금융위기 상황을 가정하면 코스피 지수가 1100선까지 떨어질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한대훈 SK증권 연구원은 “최악의 시나리오는 금융위기 발생”이라며 “이미 경고음이 울리고 있고 유동성 위기는 언제든 터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금융위기가 오면 주가는 50% 까지 하락한다. 올해 연 고점이 2267이란 점을 감안하면 약 1100수준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승민 삼성증권 연구원은 “금융시장의 자기실현적(Self-fulfill) 우려가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단 점에서 정책당국의 대응이 필요하다”면서도 “완화적 통화정책, 대규모 재정확대 정책이 발표되는 와중에도 선진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수가 급증세를 보일 수 있어 위험자산의 회복세를 저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글로벌 주식시장은 과매도 수준이나 본격적인 회복에는 다소 시간이 걸려 높은 변동성 국면이 지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