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조선일보 기자
2003.12.17 21:51:50
10.29 대책 이후 담보 축소
[조선일보 제공] 정부의 ‘10·29대책’에 따라 금융권의 주택담보 대출이 까다로워지면서 대출을 받지 못해 애를 태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정부가 서울·수도권 대부분 지역 은행의 담보 대출 비율을 40%까지 축소하고, 어느 정도 눈감아줬던 ‘제2금융권’ 대출도 조일 조짐을 보이면서 투기꾼뿐만 아니라 서민 실수요자들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담보 축소로 서민들 내집 마련도 제한
서울 중화동에서 전세로 사는 황모(34)씨는 최근 은행을 찾았다가 낙담하고 돌아왔다. 전세 만기를 앞두고 대출을 받아 1억3000만원 하는 18평짜리 다세대를 구입하려 했지만, 정부의 담보대출비율 축소로 제대로 대출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박씨가 구입하려던 18평 다세대주택은 5000만원 정도 대출이 가능, 기존 전세금(6000만원)과 저축한 돈을 보태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담보 비율 축소로 2000만원의 대출도 어렵게 됐다. 조흥은행 중화동 임병헌 부부장은 “강남의 10억원짜리 아파트 값을 잡기 위해, 강북의 18평짜리 다세대 주택을 구입하려는 사람까지 피해자가 돼야 하느냐는 고객들의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은평구에 다가구주택을 갖고 있는 최모(58)씨의 경우 세입자의 전세금 상환요구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이달 말 전세 만기까지 8000만원의 전세금을 돌려줘야 하지만, 최근 다가구·다세대 공급 과잉으로 전세 물량이 늘어 새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 전세금을 돌려주는 것도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집주인인 최씨는 “전세금 상환을 위해 사채를 융통해야 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재건축 추가부담금에 골머리
수도권 재건축 아파트 주민들도 담보대출 제한으로 추가부담금 마련에 애를 태우고 있다. 수도권에서 재건축을 추진 중인 13평짜리 아파트에서 15년 넘게 살아온 김영민(50)씨는 새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 내야 하는 공사비(1억5000만원) 때문에 난감해하고 있다. 당초 주택담보대출로 공사비를 낼 계획이었지만 최근 투기지역으로 지정되면서 담보대출 한도가 급감, 4000만원을 직접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씨는 “새 아파트 입주를 포기하려 해도 아파트 거래가 되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우건설 차화영 주택마케팅 팀장은 “서민들은 최소 2~3년 뒤를 내다보고 자금 운영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정부가 갑자기 담보대출 비율을 축소하는 바람에 대출을 받으려 했던 재건축아파트 조합원들이 돈을 마련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전세금 대출도 어려워
그동안 집값이 거의 오르지 않았던 강북지역에서 대출을 끼고 내집을 마련했던 사람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만기가 돌아오는 기존 대출에 대해서도 일부 은행들은 개인의 신용도나 소득을 고려해 연장 여부를 결정하거나 추가로 가산금리를 매기고 있기 때문이다.
또, 내집 마련이 어려운 서민들은 전세 자금을 구하는 데도 애를 먹고 있다.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정부 정책 자금인 ‘서민·근로자 전세자금’ ‘영세민 전세자금’의 대출 기준이 최근 대폭 강화됐기 때문이다. 전세자금을 대출받으려면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서가 있어야 하지만 최근 보증서 발급이 까다로워지면서 상당수 중소기업체 직원이나 일용직·자영업자들이 보증서를 발급받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율이 훨씬 높은 일반 전세자금 대출을 신청하고 있지만 최근 신용평가 기준이 강화되는 바람에 그나마도 여의치 않은 실정. 부동산컨설팅회사 ‘시간과 공간’ 한광호 대표는 “정부의 ‘돈줄 조이기’ 정책이 투기를 막긴 하지만, 동시에 실수요자에게도 큰 부담이 되고 있다”며 “투기는 잡되, 실수요자 간 거래는 원활히 이뤄지도록 하는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