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디자이너 이상봉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영원히 도전 하겠다"

by백지연 기자
2017.04.03 11:23:45

[이데일리 뷰티in 백지연 기자]

인터뷰 = 김재홍 기자 ㅣ정리·사진 = 백지연·염보라 기자

우리나라 패션업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장(巨匠)'이 한명 있다. 그동안 패션쇼를 무려 200여회 진행한 K-패션의 1세대, 이상봉 패션 디자이너다.

32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항상 새로운 디자인을 찾아 고군분투하는 그의 모습은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영원히 도전 하겠다"는 이상봉 쇼룸에 표기 되어 있는 문구처럼 포기를 모르는 듯 하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의 모습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국의, 한국을 위한 디자이너였다. 그의 티셔츠에는 안중근 의사의 손이 크게 프린트 되어 있었고 그의 휴대전화 케이스 디자인은 태극기였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닌 '진짜' 한국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지난 3월 29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이상봉 쇼룸에서 그를 만나 국내 패션 산업의 현주소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 자리에선 그의 지난 32년 패션 인생과 후배 디자이너에게 전하고 싶은 진심어린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지난 3월 29일 서울 강남구 쇼룸에서 이상봉 패션디자이너가 지난 32년 패션 인생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 오는 6일 중국 광저우에서 열리는 패션쇼에 초청 받아, 가장 중요한 마지막 날 피날레 패션쇼를 장식한다는 얘기가 있다.

"중국 '광저우패션위크' 마지막 날인 오는 13일 피날레를 맡게 됐다. 중국 등 아시아지역에서 인지도 등이 있는 디자이너가 보통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한다. 중국에는 크게 '패션 4대천왕' 이라고 하는 북경, 상해, 광저우, 심천이 대표적인 패션도시다. 그중 광저우패션위크 마지막 중요한 행사를 맡게 되어 매우 기쁘다. 우리나라의 패션위상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중국은 미국이나 유럽과 다르게 한국 문화를 잘 받아들이고 이해한다. 아마 같은 동양권이라 공감을 쉽게 하는 것 같다."

'광저우패션위크'는 4월 6일부터 13일까지 한국과 중국을 비롯, 세계 10여개국에서 100여명 디자이너가 참가하는 대규모 패션쇼와 전시회로 개막된다. 최근 중국 광저우 패션위크를 알리고 한국의 감각적인 신진을 직접 만나기 위해 리 지하이(李基海)회장이 내한했다.

- 최근 중국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가 우리나라 패션업계에도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현장에서 느끼는 분위기는 어떤가.

"패션업계가 사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행사 등이 다소 지체되지만 아직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이제 중국이라는 나라를 동반자라고 생각해야 된다. 동북아시아라는 큰 그릇으로 본다면 한국과 중국은 서로 파트너이다. 상황이 이럴 때 일수록 정치문제를 떠나 경제.문화분야에서 유대강화를 하면 잘 될 풀릴 것으로 예상한다."

- 세계 각 주요 도시마다 크고 작은 패션위크가 진행된다. 패션업계에서 패션위크가 차지하는 위치는 무엇인가.

"아시아의 경우 중국을 비롯해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폴 등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패션위크를 개최하고 있다. 패션은 그 나라의 큰 산업이기 때문이다. 원단부터 시작해 액세서리, 화장품 등 이런 모든 것들이 다 패션의 영역이기에 패션은 엄청 큰 시장이다. 하지만 패션위크를 하는 이유는 나라마다 다르다. 선진국은 디자이너 브랜드를 국가적인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후진국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 패션쇼를 진행한다. 우리나라가 힘든 시기에 패션 섬유수출로 선진국이 된 것 처럼 말이다."

- 우리나라 패션 산업의 위치는 어느 정도인가.

"아시아 패션하면 과거에는 일본이 1위였다. 하지만 현재는 한국이 아시아 패션을 선도하고 있다. 한류로 인해 서울이 아시아의 중심이 됐기 때문이다. 동남아지역 여러 국가들이 서울이 아시아의 중심이라 생각한다."

- 패션인생에서 인상 깊은 순간이 많았을 것 같다. 굳이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일을 꼽는다면.

"가장 감동받은 순간을 하나만 꼽을 수 없다. 정말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우리나라에서 패션쇼를 가장 많이 진행한 디자이너일 것이다. 국내외 패션쇼를 모두 합치면 200번 정도 된다. 내가 진행한 쇼는 하나하나마다 다 도전이었다. 지금 딱 기억나는 패션쇼는 경기도 안성 산속에서 했던 패션쇼이다. 산속에서 했음에도 수 백명의 사람들이 방문해줬다. 쇼가 끝나고 다같이 산속에서 강강수월래를 했는데, 그 순간이 잊혀 지질 않는다. 이외에도 한글쇼, 하얼빈에서 진행한 안중근 테마쇼, 각 나라에서 초청받아서 했던 쇼들이 생각난다."

-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롱런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지.

"정신없이 사는 것이다. 디자이너는 한 시즌 끝나면 다음 시즌을 바로 준비해야한다. 항상 새로운 것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것, 창의적인 것이 패션이다. 매순간 최선을 다했기 때문 아닐까. "

이상봉 디자이너는 나이를 잊고 산다고 한다. 그는 30대에 멈춰선 나이 때문인지 지금과 같이 열정적으로 살 수 있었다고 한다. 환한 미소 속에 만년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 정상의 디자이너지만 그동안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멘토나 롤모델이 있다면.

"어렸을 때부터 내성적이라 많은 사람과 소통하지 못했다. 패션디자이너가 되고 나서 존경한 디자이너는 '이브 생 로랑 (Yves Saint Laurent)'이다. 하지만 37살 때 재능이 없는 것 같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것이 너무 힘들었을 때는 디자이너라는 명함만 들고 있어도 그 사람을 존경했다. 당시 여행도 다니고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려고 갖가지 노력을 다 했지만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벼랑 끝에 서있다. 여기서 물러나면 여기서 떨어질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나 자신을 찾게 됐다. 나 자신을 찾으면서부터 포기를 모른 것 같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가고 있는 것 같다."

- 패션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대해 많은 젊은이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

"예전에는 제품 상표에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라고 적혀있으면 외국인들이 코리아가 어디냐며 코리아를 다른 나라로 바꿔 달라고 해 설움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의 패션 위상이 높아져 있어 (지금 이 시기가)젊은 디자이너들에게는 기회이고 장점이다. 이런 점은 과거에 비해 좋아졌다. 하지만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에 옛날보다 더욱 노력을 해야 한다. 자신이 정말 좋아서 디자이너를 해야지, 패션디자이너를 직업으로 삼으면 절대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칠 수 없다."

- 19대 대통령선거(5월 9일)가 40일 정도 남았다. 한 국가를 대표하는 지도자의 패션도 매우 중요하다.

"지도자의 의상은 그 나라의 사회 경제 문화 등 각 분야와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각 나라의 리더들이 그 나라의 패션 발전을 위해 먼저 앞서 자국 것을 착용하면 좋다. 패션뿐만 아니라 화장품까지도 자국 것을 이용한다면 정말 최고이다. 리더의 패션은 산업화로 직결되기 때문에 엄청난 영향을 가진다."

- 그렇다면 다음 지도자는 패션에 대해 어떤 생각은 어떤가.

"대통령 후보들이 어떻게 옷을 입는가 보다는 패션산업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줄 수 있는 가가 더욱 중요한 것 같다. (다음 지도자는) 저가품부터 맞춤복까지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당당하게 입고 우리나라 패션 산업에 힘을 줄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정치인과 디자이너 등 모두가 발을 맞춰야 한국 패션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다."

-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는 길게는 수백년 간 대를 이은 전통이 있다. 우리나라도 명문 디자이너 가문이 많이 나와야 할 것 같다. 대를 잇고 있는 아들(이청청)에 대해 애틋한 생각을 하실 것 같은데.

"아들이 현재 대를 이어주고 있어서 고맙다. 아들과 함께 국내에서 첫 패션쇼를 준비할 때 서로 스타일이 달라 의견충돌이 있었다. 하지만 이후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고 난 다음에는 다투지 않는다. 아들은 이 시대에 맞는 것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나와 방법론적으로 다른 것 같다. 최근 'LIE(라이)'라는 여성 브랜드를 론칭하고 열 번째 시즌을 맞아 컬렉션을 열었다. 현재 내 부인도 패션쪽 일을 하고 딸은 미국 뉴욕에서 갤러리와 패션을 같이 하고 있다."

이상봉 디자이너는 인터뷰를 마무리 하면서 자신이 최근 컬렉션에서 선보인 옷을 설명했다. 티셔츠 안에는 소주부터 자동차까지 한국 브랜드 상품들이 섬세하게 프린트 되어 있었다. 한국의 산업 발전을 위해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섬세한 부분까지 신경 쓴 그의 모습은 앞으로 어떻게 그가 더욱 새롭고 창의적인 디자인으로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릴지 기대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