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살인 김태현 사형 선고했어야…잘못된 선례" 유가족 통곡

by이소현 기자
2021.10.12 14:20:14

12일 '세 모녀 살해' 김태현 1심 무기징역 선고
"일가족 3명 죽였는데 어떻게 사형이 아니냐" 울분
복역 20년 후 가석방 대상…"사회에 나올까 우려"
사형 아닌 무기 선고에 '불복' 유족 측 "항소할 계획"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스토킹 살인에 대한 처벌이 무겁다는 선례를 남겼어야 하는거 아닌가요.”

12일 서울북부지법 앞 ‘세 모녀 살해’ 사건의 피해자 유족 측은 1심 무기징역 선고 소식에 분개했다. 유가족 중 일부는 “일가족 3명을 죽였는데 어떻게 사형이 아닐 수 있느냐”며 통곡했다.

12일 서울북부지법 앞에서 ‘세 모녀 살해’ 사건 피고인 김태현에 ‘무기징역’이 선고 된 후 피해자 측 유가족이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사진=이소현 기자)
서울북부지법 형사합의13부(오권철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11시 살인·절도·특수주거칩입 등 5개 혐의로 기소된 김태현의 선고 공판을 열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앞서 김태현은 피해자인 세 모녀 중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큰딸 A씨가 연락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스토킹’을 하다가 지난 3월 23일에는 A씨의 집에 찾아가 여동생과 어머니, A씨를 차례로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다.

검찰은 결심 공판에서 “극형 외에는 다른 형을 고려할 여지가 없다”며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긴 시간 사회와 격리돼 반성하고 피해자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도록 사형 외에 가장 중한 형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사형 주장이 당연할 수도 있으나 법원으로선 형벌의 엄격성과 유사 사건과의 양형 형평성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피고인의 생명을 박탈할 수 있는 누구라도 인정할 만한 객관적 사정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김태현이 △벌금형을 초과하는 범죄 경력이 없는 점 △반성하는 취지의 반성문을 제출한 점 △법정에서 피해자와 유족에게 사죄의 뜻을 밝히고 있는 점을 포함해 다른 중대 사건 양형과의 형평성 등을 종합해 판시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가 양형의 이유 등을 25분간 설명할 때 묵묵히 듣고 있었던 유족들은 “무기징역에 처한다”고 선고가 내려지자 즉각적으로 항의의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유족들은 “왜 사형이 아니냐”, “사람을 더 죽이면 사형인가”, “재판장님, 절규합니다”라며 울분을 터트렸고, 쉽사리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서울 노원구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태현이 4월 9일 오전 서울 창동 도봉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기 앞서 무릎을 꿇고 있다.(사진=이영훈 기자)
‘세 모녀 살해’ 사건 피해자 유족 측은 그동안 재판부에 탄원서를 40여차례 제출하는 등 김태현에 엄벌을 내려달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이날 1심에서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이 선고되자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나섰다.

피해자 A씨의 외삼촌은 “오늘 선고가 정말 실망스럽다”며 “3명을 죽였는데 어떻게 무기징역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피해자 A씨의 고모는 “엄벌 탄원서를 받으러 다닐 때 모든 이들이 당연히 사형이라고 했는데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내렸다”며 “국민 여러분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시키는 처벌인 무기징역은 우리 형법체계에서 사형 다음으로 무거운 형벌에 해당한다. 무기징역이 결코 가벼운 형벌은 아니지만, 피해자 유족들은 무기징역이 아닌 사형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촉구했다. 이는 형법상 무기징역을 선고받더라도 복역 20년이 지나면 감형과 가석방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무부 심사를 거쳐 형을 종료하고 사회로 복귀할 기회가 있다는 얘기다.

특히 유족 측은 김태현이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피해자 A씨뿐 아니라 일면식이 없는 여동생과 어머니까지 일가족 모두를 사망에 이르게 했는데도 이 정도 수준의 벌을 받는다면 잘못된 선례를 남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피해자 A씨의 고종사촌은 “설마 설마 했던 일이 오늘 이렇게 일어나고 말았다”며 “사형 선고에 대해서 재판부 자체가 예전과 달리 소극적인 분위기와 태도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A씨의 고모는 “김태현을 죽여달라는 게 아니다”라며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사회에 나올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1심에서 사형이 선고돼 스토킹 살인이 이만큼 무겁다는 선례를 법원에서 남겼어야 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피해자 A씨의 고종사촌은 “스토킹으로 인해서 일가족이 살해되는 일이 발생했다”며 “재판부는 사형선고는 선례를 따른다고 하는데 그런 선례가 없다고 해서 이런 사람이 무기징역을 받나”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이번 재판이 선례가 돼서 스토킹 살인 범죄에 경종을 울려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피해자와 유족뿐 아니라 앞으로 저희와 같은 고통을 겪을 수 있는 분들을 위해서 반드시 선례를 남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 모녀 살해’ 사건의 유족 측은 1심 판결에 불복, 항소할 뜻을 밝혔다. 피해자 A씨의 고종사촌은 “현재 판결 자체는 유족으로서 인정할 수 없다”며 “강력한 처벌로 엄중한 벌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용기있는 재판부의 판결을 기대하며 항소를 꼭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