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먼저 죽을판"‥중국에 손내미는 대만 반도체
by장순원 기자
2015.12.07 14:32:40
"반도체 설계기업 中 투자막는 규제 달라져야"
대만은 투자유치 시장공략‥中기업 경쟁력 확보
[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반도체산업의 강자 대만이 중국과 해빙을 모색하고 있다. 기술을 빼 갈까 봐 중국의 투자를 뿌리치기보다, 손잡고 경쟁력을 키우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많은 대만 반도체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중국투자를 가로막았던 규제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6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대만정부는 지난 1980년대부터 반도체산업을 전략적으로 키워왔다. 삼성전자·인텔처럼 대형 종합반도체업체(IDM) 대신 반도체 설계 전문 업체(팹리스)와 외주생산 업체(파운드리), 후공정 업체(패키징)의 수직분업 구조로 육성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기업의 대만 반도체 설계전문기업 투자는 엄격하게 막아놨다. 기술 유출을 우려해서다.
대만 반도체 기업은 작년 기준으로 전 세계 반도체 생산량의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대만 경제에서도 절대적 위치다. 반도체 산업은 대만 수출의 40%를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중국 본토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저가제품을 앞세워 밀어붙이는 중국 기업 탓에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6월 중국정부가 외산 비중이 높은 반도체를 국산화하기 위해 앞으로 10년간 1조위안(약 181조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대만 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중국이 반도체분야에서 대만을 앞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기술력이 대만보다 뒤처져 있지만,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면 판도가 뒤집힐 가능성이 크다.
또 중국기업이 중국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면 대만기업으로서는 중요한 시장을 잃을 수도 있다. 중국은 작년 반도체를 사는데 2410억달러를 썼다. 전략물자인 원유(2280억달러) 구매비용보다 많은 규모다.
대만에서는 기술격차가 줄어들기 전에 중국기업에 투자를 받는 게 낫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중국투자를 받아 경쟁력도 키우고, 세계 최대인 중국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중국으로서도 대만기업과 손을 잡으면 반도체 전(全) 공정에서 대만의 기술을 습득할 수 있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또 반도체 부문별로 달리 적용되는 규제의 형평성도 문제다. 마크 리 번스타인 애널리스트는 “높은 기술적 가치가 있다는 명분으로 반도체 설계부문만 투자를 규제하고 있다”면서 “설계회사인 미디어텍보다 위탁생산업체인 TSMC가 훨씬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차원에서도 투자규제를 풀겠다며 지원사격에 나섰다. 존 덩 대만 경제부 장관은 “대만 업계가 엄청난 경쟁에 직면한 가운데 중국 투자에 대한 개방 외에는 방법이 없다”면서 “임기 내에는 (중국기업에 문호를) 개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만의 3분기 경제(GDP) 성장률은 전년대비 1.1% 감소했다. 마이너스 성장은 지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반도체 산업의 부진 영향이 컸다.
문제는 중국과 대만의 특수한 정치적 관계다. 경제부문에서는 중국과의 교역이 전체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밀접하다. 하지만, 정치적 부문에서는 여전히 껄끄럽다. 특히 내년 1월16일 총통선거에서 당선이 유력한 차이잉원 민진당 주석은 중국 본토와 가급적 거리를 두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 칭화유니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칭화유니는 지난달 대만 반도체 패키지업체 파워텍의 지분을 25% 사들이며 대주주가 됐다. 대만 정부가 이번 거래를 승인하면 앞으로 중국기업에 투자의 문호를 열겠다는 강력한 신호가 된다. 다만 대만내 반(反)중국 여론이 변수다.
디스플레이용 반도체 생산업체 하이맥스의 조던 위 CEO는 “정부가 공격받을 가능성이 커 (승인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