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합비리 먼저 폭로하면 선처…카르텔, 서로 못믿는다
by이배운 기자
2023.04.25 16:03:06
檢 ‘카르텔 형벌감면제도’ 도입 성과 가시화
가구·교복 대규모 담합, 가담자 신고로 적발
각분야 담합 가담자 자진신고 ‘기폭제’ 되나
[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담합 행위를 자진해 신고하고 수사에 협조한 자는 형을 면제·감경해주는 ‘카르텔 형벌감면제도’ 효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내부자가 비리를 폭로할 요인이 생기면서 앞으로 각계 각 분야의 담합 행위 적발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전경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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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지난 2020년 12월 ‘카르텔 사건 형벌감면 및 수사절차에 관한 지침’을 마련했다. 지침은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기 전에 담합 행위를 입증할 증거를 최초로 제공하고, 수사·재판에 성실하게 협조한 자를 ‘1순위 형벌감면 신청자’로 인정해 기소를 면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수사가 개시된 이후라도 검찰이 증거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결정적인 도움을 주면 역시 1순위자로 인정받아 기소가 면제될 수 있다. 2순위로 자진 신고하고 수사에 협조한 자는 기소는 하지만, 구형량을 절반으로 낮춰주기로 했다.
카르텔 형벌감면제도는 내부자의 신고를 유도해 갈수록 은밀해지는 카르텔의 적발 가능성을 높이고, 관련자들을 빠짐없이 엄단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아울러 카르텔 내부자 간 신뢰를 무너뜨려 카르텔의 자체적인 붕괴를 유도하고, 새로운 카르텔 형성을 예방한다는 기대효과도 있다.
실제로 제도 도입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25일 서울중앙지검에 따르면 공정거래조사부는 최근 아파트 신축현장 783곳의 빌트인가구 물량을 담합한 8개 가구업체와 최고책임자 등 14명을 재판에 넘겼다. 파악된 담합 규모는 약 2조3261억원에 달한다.
이 사건은 카르텔 형벌감면제도가 최초로 적용된 사례다. 검찰은 지난해 5월 내부자로부터 자진신고를 접수해 관련 가구사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담합을 최종적으로 승인한 대표이사와 총괄 임원들을 특정해냈다. 검찰은 법인에 대한 벌금형에서 나아가 의사결정 책임자에게 직접 철퇴를 가해 담합 행위를 효율적으로 억제하겠다는 방침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담합으로 인한 빌트인가구 가격 상승은 아파트 분양 가격 상승으로도 이어진다”며 “서민들의 ‘내집마련’ 꿈을 어렵게 하는 가구 업계의 고질적인 담합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광주지검 반부패·강력수사부는 광주지역 45개 교복업체가 최근 3년간 조직적으로 입찰담합 행위를 한 사실을 밝혀내고, 업체 운영자 31명을 재판에 넘겼다. 이 사건 수사 역시 담합 가담자의 자진신고와 협조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업체들은 광주 소재 중·고등학교에서 실시된 교복공동구매 입찰에서 총 289회 담합 행위를 벌였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1인당 약 6만원 더 비싸게 교복을 구매하고, 업체들은 32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카르텔이 적발되면서 교복 가격은 다시 정상화됐다.
검찰 관계자는 “담합 행위는 이해관계가 동일한 내부자들 사이에서 매우 은밀하게 이뤄지고, 담합을 폭로하더라도 사실상 불이익만 있어서 정보가 좀처럼 새지 않는다”며 “하지만 형벌감면제도는 담합을 폭로하고 수사에 협조할 이유를 제공하기 때문에 카르텔 적발 및 엄단에 유용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는 이어 “최근 카르텔 형벌감면제도 첫 적용사례가 나타난 것을 기점으로, 다른 분야에서의 담합 행위도 내부자 자진신고와 수사 협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