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빛내리 서울대 석좌교수 "연구는 질투 많은 애인 같은 것…한순간도 소홀히 하면 안 돼"

by이연호 기자
2019.04.19 17:14:59

국내 과학자 중 노벨상 가장 근접한 과학자 중 한 명으로 평가
유전자 발현 조절하는 RNA 분야 연구 선도하는 세계적 석학
"여성 과기인 유리천장 해소, 스스로 편견 갖고 있다는 인식부터 출발해야"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연구는 질투가 많은 애인 같은 것입니다”

김빛내리(사진)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석좌교수는 19일 제주 서귀포시 중문동 ICC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국미생물학회 창립 60주년 국제학술대회’에서 ‘생명의 작은 열쇠, RNA(리보핵산)’를 주제로 특강을 진행한 직후 이데일리와 가진 인터뷰에서 “연구는 조금만 신경을 안 써주면 토라져서 가 버리는(즉 추세를 놓쳐 버려 다시 잡기 힘든) 것”이라며 이 같이 밝혔다.

김 교수는 세포 안에서 유전자를 조절하는 ‘마이크로 RNA’가 만들어지고 작동하는 원리를 세계 최초로 규명하는 등 이 분야 연구를 선도하는 세계적 석학으로 국내 과학자 중 가장 노벨상에 근접한 과학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김 교수는 노벨상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연구를 즐기며 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김 교수는 “노벨상은 받고 싶다고,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하지 않는다”며 “재미있게 하고 싶어서 연구를 하고 있고 그런 연구가 생산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여성과학기술인에 대한 유리천장 해소를 위해 인식과 제도 차원의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여성 과학기술인들이 자신들에 대한 보이지 않는 편견들과 부지불식간에 자신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환경들에 맞닥뜨리게 되면 스스로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부터 시작해 결국 일찌감치 연구를 포기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며 “교수든 학생이든 스스로 편견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도적 차원에서는 대학원생들이 아이를 낳고 육아하는 기간 휴식을 허용해 주고 대학이나 연구소에 어린이집을 설치하거나 탄력근무제를 장려하면서 서로 배려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 정부가 강조하는 ‘연구자 중심 연구환경’이 현장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급격히 늘리기는 어렵겠지만 바텀업(bottom-up·상향식) 연구 사업에 대한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 시간을 벌기 위해 회의를 하거나 혼자 책을 읽으며 점심을 해결할 정도로 연구에 매진한다는 김 교수는 “은퇴할 때까지 연구를 좋아하고 즐기는 마음을 가진 과학자로 남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제자들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도 표현하며 과학자인 동시에 교육자로서의 사명감도 언급했다. 김 교수는 “제자들이 나보다 더 나은 연구자들이 됐으면 좋겠다”며 “독립성과 자율성의 기반 아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 가면서 잘 키워내고 싶다”고 언급했다.

한편 김 교수는 대중강연 형식의 특강에서 연구 과정상의 어려움을 앎의 즐거움으로 극복해 가며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과학자를 꿈꿨고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하다 보니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며 “그 과정이 항상 편하고 즐겁고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도 없어지지 않는 배움의 기쁨이 여기까지 올 수 있는 동력이었다”고 회고했다.

김 교수는 RNA 기초연구가 응용 연구로 확대돼 가는 과정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도 언급했다. 김 교수는 “연구를 통해 지적 충족감을 느낄 수 있어 좋을 뿐만 아니라 RNA 발견, RNA 작동 원리 이해, 유전자 조절 원리 이해라는 기초연구가 RNA 검출 기술, RNA 전달 기술, 유전병 및 바이러스 질환 제어, 환경 문제 해결 등 응용연구로 발전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흐뭇하다”며 “내가 직접 하지는 않아도 기초연구를 활용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이 같은 연구 확대 과정을 보면서 심리적인 보상을 많이 받는다”고 얘기했다. 또 “이제는 비단 기초연구에서 응용연구로 발전돼 가는 것 뿐 아니라 거꾸로 임상시험 환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유전자 기능을 예측하는 등 기초연구와 응용연구가 함께 발전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