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캐리 트레이드의 종말…글로벌금융시장, 험로 예고

by방성훈 기자
2024.08.06 17:42:27

‘블랙 먼데이’ 등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조정장 주도
日 금리인상 후 美 금리인하 전망→엔화 강세 급전환
불확실성↑ 우려…"청산 종료까지 변동성 계속 유발"
美선 125bp 금리인하 압박…“엔캐리 청산 가속화 우려”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5일(현지시간) 전 세계 주요 증시 하락(블랙 먼데이)을 촉발한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시작에 불과하다” 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청산이 본격화하면 패닉셀(과매도)을 야기, 미국 경기침체 우려,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 고조와 더불어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 및 불확실성을 더욱 키울 것이란 우려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AFP)


미 시사 주간지 디 애틀랜틱은 이날 미국 기술주를 비롯한 글로벌 증시하락의 원인으로 △미국 경기침체 우려 △인공지능(AI) 투자 거품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을 꼽으면서 “시장 조정을 주도하는 것은 엔캐리 트레이드의 청산”이라고 진단했다.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을 계기로 경기침체와 AI 거품론을 우려한 투자자들까지 돈을 빼고 있다는 설명이다.

B.라일리 웰스의 수석 시장 전략가인 아트 호건은 악시오스에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매우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며 “청산이 끝날 때까지 글로벌 금융시장에 변동성을 계속 유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엔캐리 트레이드란 저금리인 엔화를 빌려 고금리 국가의 자산에 투자해 수익을 추구하는 거래 기법으로, 1990년대 가계 재정을 관리하는 일본의 가정 주부, 일명 ‘와타나베 부인’에 의해 시작됐다. 이후 2000년대 들어서는 헤지펀드·자산운용사·보험사·연기금 등에 의해 널리 사용됐다. 가장 최근의 엔캐리 트레이드는 2022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유럽중앙은행(ECB)이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올리면서 진행됐다. 2016년부터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해 온 일본과 장기금리(국채 10년물 금리) 격차가 확대했기 때문이다. 특히 달러·엔 환율이 엔저 한 방향으로만 진행됐기 때문에 월가에선 가장 인기 있는 전략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몇 년 동안 은행, 자산운용사 및 기타 기관 등은 엔화를 공격적으로 차입했다”고 전했다.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은 멕시코, 브라질 등 신흥국이나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은 물론 일본에도 투자됐다. 통화부터 국채, 주식, 부동산, 심지어 비트코인까지 다양한 자산에 투입됐으며, 특히 헤지펀드를 중심으로 미 기술주에 상당액이 흘러들었다. 전체 규모는 정확하게 집계하기 어렵지만 총 20조달러(약 2경 7500조원)로 추정된다. 조금만 자금이 움직여도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는 규모다.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은 BOJ가 지난달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단기금리를 인상(0~0.1%→0.25%)하고, 연준이 9월 금리인하를 시사하며 촉발했다. 엔화가 급작스럽게 강세로 돌아섰고, 엔화 약세에 베팅한 투자자들은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서둘러 ‘손절’에 나섰다. 미 기술주에 투입된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이를 엔화로 바꾸면서 엔화 가치가 급등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161엔대였던 달러·엔 환율은 미일 장기금리 축소 전망에 전날 한때 141엔대까지 폭락했다.

WSJ은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데이터를 인용해 7월 초 헤지펀드 등 투자자들이 엔화 약세에 베팅한 계약은 18만개 이상, 순자산 기준 140억달러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이어 지난주까지 순자산은 60억달러로 절반 이상 줄었다고 덧붙였다.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대거 이뤄졌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주식 매도세도 지속될 수 있다는 얘기다. ING는 “이는 엔화 대출 시장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며 국제결제은행(BIS) 데이터를 인용, 2021년 말 이후 국경간 엔화 차입이 7420억달러(약 1021조 2100억원) 증가했다고 전했다. 또 올해 3월 기준 일본 시중은행들이 외국인 차입자에게 빌려준 엔화는 약 1조달러로 2021년 대비 21% 늘었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은 경기침체 우려를 앞세워 연준이 더 큰 폭으로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FFR) 선물 시장 참가자들은 연준이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50bp(1bp=0.01%포인트) 인하할 확률을 73.5%로 보고 있다. 불과 사흘 전까지만 해도 25bp 인하 확률이 69.5%였다.

아울러 올해 남은 2번의 FOMC에서 75bp 추가 인하해 연말에는 4.0~4.25%까지 내릴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는 현재 금리(5.25~5.5%)보다 125bp 낮은 수준이다. 다만 이 경우 엔화 강세를 부추겨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편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과 함께 일본 증시가 폭락한 것과 관련, 파이낸셜타임스(FT)는 “결국 그동안의 일본 증시 랠리를 주도한 것은 대부분이 외국인이었다는 의미”라며 “마치 관광객과 같았던 외국인 투자자들은 놀라운 속도로 증시에서 빠져나갔다”고 평가했다.